8-2-5. 건강한 사람들의 성격
융은 다른 이론가들처럼 건강한 성격의 특성에 관한 목록을 우리에게 제시하지 않았다. 즉 그는 건강한 성격의 소유자에 대한 상세한 초상화를 그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저서에 산재해 있는 것을 한 데 모아 보면, 적어도 건강한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지 우리는 그려 볼 수 있다.
융이 말하는 진정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중년기 혹은 그 이후에 나타난다. 이들은 이 시기를 겪으면서 성격 본성의 변화로부터 생겨나는 냉혹한 위기를 견디어 낸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삶, 야망, 희망 그리고 목표를 생각하면서 여러 해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무의식이 나타나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이전에 억압되었던 본성의 측면을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건강한 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자각自覺을 성취하게 된다. 즉 그들은 의식과 무의식 수준에서 모두 자기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건강한 사람의 첫 번째 특성이다.
자각과 함께 자기수용自己受容이 발달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자기 탐색의 시기에 자기에게 드러나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신들 본성의 장점과 약점, 성스러운 면과 악마적인 면을 수용한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페르소나를 쓰지만, 그것은 단지 사회적 편의를 위해서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갖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한 역할을 진정한 자기와 혼동하지 않는다.
건강한 사람들의 세 번째 특성은 자기통합自己統合이다. 자기가 통합될 때 성격의 모든 측면들이 통합되고 조화를 이루어 모든 것이 표출될 수 있다. 생애 처음으로 어떤 측면이나 태도 혹은 기능도 어느 한 가지가 지배를 하던 것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성격의 모든 부분들의 통합과 표출은 심리적 건강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므로, 자기표현自己表現은 건강한 사람들의 네 번째 특성이 된다.
또한 그러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인간 본성의 수용受容과 관용寬容이라는 다섯 번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건강한 사람들은 집단적 무의식에 대단히 개방적이기 때문에 인간 상황을 훨씬 잘 인식하며 관대한 태도를 가진다. 그들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류의 유산으로부터 전해지는 힘을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한층 더 깊이 통찰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건강한 사람들은 인류에 대하여 한결 많은 연민의 정을 느낀다.
건강한 사람들은 융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미지未知와 신비神秘의 수용受容이라는 여섯 번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이성만으로 된 창조물이 아니기 때문에 의식 속에 무의식적, 비이성적 요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그들은 꿈과 환상에 주의하며, 한편으로는 이성과 논리를 사용하면서 무의식의 힘으로 그러한 의식의 과정을 조정한다. 이러한 미지와 신비의 수용은 또한 투시력에서부터 신앙에 이르기까지 초자연적이며 영혼적인 현상을 포함한다.
건강한 사람은 보편적 성격普遍的 性格이라는 일곱 번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성격의 어느 한 면이 지배적이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독특성은 사라진다. 그러한 사람은 더 이상 어떤 특정한 심리적 유형에 속한다고 설명할 수가 없다. 젊었을 때는 상당히 남성적이고 외향적이며 감상적이었던 사람도 일단 개별화가 일어나면 이러한 독특한 특징들은 사라진다. 이러한 특징들이 더 이상 지배적인 것이 아니므로, 그 사람을 어떤 특정한 심리적 유형으로 분류하기란 불가능하게 된다.
융이 말하는 건강한 사람이란 성인聖人이나 어떤 틀에 박힌 이상적인 인간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농부는 농부답고, 학자는 학자답고, 한국인은 한국인다운 사람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갖춘 사람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원만하고 선하다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속하고 있는 사회의 윤리관에 비추어 그는 때로는 이기적이라는 평을 받고, 때로는 냉정하다는 평을 받고, 때로는 일관성이 없다고 비난을 받을지 모른다. 때로는 무한한 정열로 이웃을 돕고, 때로는 권력의 도가니에서 싸우고, 금욕과 정욕에 사로잡히며 고민하고, 때로는 질투와 증오의 감정으로 허덕일 것이다. 다만 그의 머리에는 집단적 투사에 의하여 생기는 명성이라는 후광이 없고, 구태여 스스로 그 후광을 만들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만일에 누가 그것을 만들어 씌워 주면 그는 또 구태여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인생에서 대수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해야 할 바를 마음 속에 묻고, 그것이 그가 가야 할 길이면 그렇게 간다. 그것 때문에 그가 대인 관계에서나 세속적인 이권에 반해서 손해를 보게 된다 하더라도 ― 그는 진정으로 고독한 사람일 수도 있다. 또한 그는 자기와의 일치라는 점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강하다, 약하다 하는 의식을 그는 가지지 않는다. 그는 반성할 줄 알며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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