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87, 벼락)

이효범 2021. 11. 19. 21:02

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87, 벼락)

 

o 벼락

 

구녕 이효범

 

선유도 바닷가를 걸었다.

하늘에는 달이 밝고

하얀 수염이 바람이 날렸다.

사람은 왜 죽는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17세에 만난 절벽이었다.

나는 평생 헛살았나?

눈물이 발밑으로 떨어졌다.

거기 모래더미가 있었다.

한 알의 모래가 바로 나였다.

 

시작도 없이 끝도 없이 침묵하라, 모래여.

너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후기:

위드 코로나를 맞아 고군산열도의 중심에 있는 선유도에 갔습니다. 선유도는 새만금 방파제에서부터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예전에는 배로만 갈 수 있던 그곳을 이제는 차로 쉽게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섬의 풍광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고즈넉했던 섬이 현대 물질문명으로 확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조금은 불편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한 밤에 잠이 오지 않아, 혼자 해변을 거닐었습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었습니다. 긴 모래사장을 거닐면서 평생을 두고 하는 화두가 떠올랐습니다. 그 때 나는 셀 수 없는 발밑의 모래 더미에서 한 알의 모래가 나에게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는 죽어서 하늘에 빛나는 거대한 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닷가에 떨어진 조그만 모래알이 되는 것입니다.

아니, 사실은, 한 알의 모래나 하나의 별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