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겨울에 홍건적이 고려 땅을 침입해 왔다.
“피난 안 가고 뭐하세요?”
“홍건적에게 잡히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답니다.”
백성들은 너도 나도 앞을 다투어 피난을 떠났다. 민씨도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피난길에 올랐다. 성한 사람도 고생스러운 피난길에, 병든 노인을 모시고 가는 길이 편할 리 없다. 그러나 민씨는 그 난리 중에서도 어머니를 편히 모시기 위해 온 정성을 다했다. 난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민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가 애를 쓴 덕분에 나는 피난하는 동안에도 집에 있을 때와 똑같이 편했단다.”
얼마 후,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민씨는 몹시 슬퍼하면서 정중히 장례를 치렀다.
“어머니, 이제 서울로 가서 저희들과 함께 사시지요.”
아들 구용이 말했다. 하지만 민씨는 조용히 고개만 저었다.
“괜찮다. 난 그냥 여기서 살겠다.”
“왜 그러세요. 어머니 외할머니를 모시느라고 그만큼 고생하셨으면 됐어요. 이제부터는 제가 편히 모실게요.”
“장모님, 그렇게 하십시오. 처남에게도 효도할 기회를 주셔야지요.”
구용의 말에 옆에 있던 사위도 한몫 거들었다.
그러자 민씨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내가 이곳을 떠나면 외할머니 산소에 성묘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너희들을 따라갈 수가 있겠느냐?”
“어머니, 저희들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마다 제사를 지내겠습니다.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
“아니다. 내가 남아서 산소를 돌보는 게 도리지. 서울로 가는 건 그리 서두를 일이 아니야.”
민씨는 끝내 아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구용이 일찍 일어나 보니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아침밥을 지으시는 걸까?'
구용은 늙은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것에 무거운 마음으로 마당에 나왔다.
“어머니!”
어머니를 부르며 부엌에 들여다보던 구용은 멈칫했다. 어머니가 아궁이 앞에서 치맛자락을 거두며 말했다.
“어머니야말로 너무 일찍 일어나셨네요. 아무튼 고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얘도 참, 별 말을 다 하는구나! 이까짓 게 무슨 고생이라고…….”
민씨는 말끝을 흐렸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구용이 일어나 보니 어머니의 모습이 또 보이지 않았다. 구용이 부엌을 들여다보니 이번에도 어머니가 아궁이 앞에서 물기가 밴 치맛자락을 말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무엇을 하셨기에 치맛자락이 젖은 걸까?’
구용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래서 그 다음 날은, 잠이 든 척하고 누워서 어머니의 모습을 살폈다. 동이 트기도 전, 자리에서 일어난 어머니는 옷매무새를 정성껏 만지시고 밖으로 나가셨다. 구용은 따라 나가 어머니의 뒤를 밟았다. 어머니는 산 속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바삐 걸어가시더니, 어느 곳에 멈춰 섰다.
‘아 어머니!’
구용은 콧등이 시큰해졌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산소에 절을 올리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아들이 해야 할 일까지 하시느라고 이른 새벽부터 이슬 내린 산길을 걸으셨구나! 젊은 우리가 늙으신 어머니의 효성을 따르지 못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구용의 눈에는 어느 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 구용의 어머니 민씨는 그 후에도 날마다 친정어머니의 산소에 성묘하러 다녔다. 몸이 쇠약해져서 자리에 눕기 전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성묘를 했다. 민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구용은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르고 무덤 옆에 오두막을 지어 그 곳에서 3 년을 살았다.
<민씨의 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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