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에 관한 좋은 문장들

행복의 기원

이효범 2021. 4. 10. 17:47

o 행복을 좇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 내 인생에 무엇이 있어야 행복할까?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부분 돈, 명예, 건강 등 몇 개의 범주 안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창고에 이 행복곡물들을 많이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산다. 주식에 비유한다면 돈과 같은 삶의 조건들이 가장 확실한 행복이윤을 가져다주는 종목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많은 것을 거기에 투자한다. 사실일까? 결국 행복은 무엇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일까?

행복에 대해 가장 흔히 하는 이 생각은 동시에 가장 틀린 생각이기도 하다. 미국 심리학회 회장을 지낸 스콧 릴리언펠드 교수가 심리학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오해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얼마 전에 출간(한국에서는 유혹하는 심리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큰 착각중 하나도 행복이 외적인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는 믿음이다.

학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이것을 착각이라고 말하는가? 간단하다. 지난 30년간의 행복 연구로 누적된 엄청난 양의 자료에서 나온 총체적 결론이다. 인생의 여러 조건들, 이를테면 돈, 건강, 종교, 학력, 지능, 성별, 나이 등을 다 고려해도 행복의 개인차 중 약 10~15% 정도밖에 예측하지 못한다. 몇 해 전 한국심리학회에서 체계적으로 조사한 한국인의 행복에 대한 결론도 이와 비슷하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의 10%와 관련된 이 조건들을 얻기 위해 인생 90%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

톨스토이는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산다고 했지만 나는 빵도 먹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수도승처럼 살자는 제안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외적 조건에 과도한 기대와 투자를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돈은 비타민과 비슷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비타민 결핍은 몸에 여러 문제를 만들지만, 적정량 이상의 섭취는 더 이상의 유익이 없다. 한국은 이제 돈이나 비타민 결핍에 시달리는 사회가 아니다. “그래도 더 필요해!”라고 고집 피우는 것은 기회비용 차원에서 본다면 자기 삶에 큰 손실을 입히는 것이다. 이 믿음은 행목을 위해 정작 투자해야 할 곳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많이 갖는 것이 행복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끝없이 많다. 이 방대한 자료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인생의 외형적 스펙 중 대표적인 돈과 행복의 관계는 한마디로 본인의 경제 수준에 따라 다르다. 하루 세끼 식사를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에게 돈은 매우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다. 하지만 세끼 식사를 안 하는 이유가 다이어트 때문이라면, 이 사람에게 돈은 더 이상 행복의 발판이 되지 못한다.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면 국가의 행복과 경제 수준은 서로 손을 놓아버린다. 국가 간 행복수치와 GDP는 분명히 관련이 있지만, 이것은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 못하는 극빈의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료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최빈국들을 제외하면 얘기는 아주 달라진다. 선진국의 경우, 추가적인 경제 발전이 더 높은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예일 대학 경제학자 로버트 레인 교수에 의하면 지난 50년간 미국의 평균 가계소득은 약 2배로 증가했지만, 미국인 중 매우 행복하다는 답변을 한 사람은 1957년에는 53%, 2000도에는 47%. 그래프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듯 미국 경제는 성장했지만, 행복 수준은 자로 그은 것처럼 그대로다.

부유해질수록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미국 남가주 대학의 경제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이 지적한 이 현상을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라고 한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행복수치는 특히 높다. 흔히 그들의 높은 소득과 사회복지 시스템에서 오는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오해다. 일본이 핀란드보다 국민소득은 높지만 행복수치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다. 스칸디나비아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다. 그들 사회는 돈이나 지위 같은 삶의 외형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에 더 관심을 두고 사는 곳이다. 핀란드는 인테리어 소품 등을 디자인했던 알바 알토의 얼굴을 화폐에 새긴 나라다. 일상의 작은 경험의 가치를 아는 나라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행복한 사회의 특성 중 하나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도록 하자. 지금 언급하고 싶은 것은, 빈곤을 벗어난 사회에서 돈은 더 이상 행복의 키워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

돈 이외에도 여러 인생자원들이 있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논리는 모두 비슷하다. 그것을 (가능하면 많이) 소유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가령 건강이나 외모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한국인의 관심사다. 약효가 증명되지 않은 아프리카 코뿔소의 뿔을 극성스럽게 찾는 동양인들 때문에 이 동물은 현재 멸종 위기에 있다. 성형외과에는 인생역전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행복한 사람은 이런 인생자원들을 많이 가진 사람일까? 건강하고 예쁜 사람? 이것이 사실이라면 운동선수들과 연예인들은 늘 행복해야 하지만, 그들도 울고 좌절하고 심지어 자살도 한다. (---) 하지만 흥미로운 결과가 하나 나타났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도(주관적 미모)는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외모뿐 아니라 다른 삶의 조건(건강, 돈 등)과 행복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났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중간 정리를 한번 해보자. 사람들은 인생의 좋은 것들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행복의 전제 조건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논문들이 내놓는 결론은 다르다. 결국 둘 중 하나다. ‘행복은 소유라는 생각이 틀렸거나 연구들이 엉터리거나. 그러나 연구를 문제 삼기에는 자료의 양이 너무 방대하고 결론도 일관적이다. 지금까지 수백 편의 논문에서 수천 만 명의 행복을 분석한 결론을 의심하는 것보다는 삶의 조건이 곧 행복이라는 생각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이 생각은 몇 가지 맹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의 머리는 불행하지 않은 것행복한 것의 질적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생수 한 병은 갈증의 고통을 없애주지만, 갈증이 가신 사람에게 물은 더 이상 행복을 주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이나 건강 같은 인생의 조건들은 사막에서의 물과 비슷하다. 일상의 불편과 고통을 줄이는 데는 효력이 있지만, 결핍에서 벗어난 인생을 더 유의미하게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래서 건강과 행복의 관계도 흐릿하다. “오늘은 나의 건강한 다리로 잘 걸어다녔고, 머리도 아프지 않았던 참 행복한 날이었지.” 건강한 사람 중에 밤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잠드는 경우는 없다.

예를 들어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중립 상태를 ‘0’이라 하고, ‘-10’을 최고 불행한 상태, ‘+10’을 최고 행복한 상태라고 하자. 정서학자들의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불행의 감소(: -4에서 0)와 행복의 증가(: 0에서 +4)에 기여하는 요인들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을 긍정.부정 정서의 독립성이라고 하며, 정신 병리에 몰두했던 심리학이 행복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론적 배경이다. 이 말을 쉽게 푼다면,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는 서로 다른 별개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행복을 따뜻한 샤워에 비유한다면, 우리의 정서 시스템은 찬 물과 더운 물을 조절하는 꼭지가 따로 달려 있는 샤워기와 같다. 불행의 요인들을 줄이는 것은 마치 찬물 꼭지를 잠그는 것과 비슷하다. 이것으로 샤워물이 덜 차가워질 수는 있지만 더 따뜻해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많은 삶의 조건들은 이 샤워기의 찬물 꼭지와 비슷하다. 물을 덜 차게. 즉 삶을 덜 불편하게 만드는 효과는 크지만, 물을 뜨겁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 생각이 가진 또 하나의 허점이 있다. 인생의 어떤 변화가 생기는 순간과 그 변화가 자리 잡은 뒤의 구체적인 경험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둘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는다. 꿈꾸던 대학에서 입학 통지서를 받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하지만 막상 대학생이 되어 낯선 환경에서 학업 스트레스를 받으며 외롭게 보내는 일상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개강 직 후 나는 종종 연세대학교 신입생들에게 아직도 입학해서 기쁘냐고 묻는다. 대답도 없이 대부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becoming(~이 되는 것)’‘being(~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집 며느리가 되는 것(becoming)과 그 집안 며느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사는 것(being)은 아주 다른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지, 이 삶을 구성하는 그 뒤의 많은 시간에 대해서는 미쳐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큰 행복의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살면서 깨닫게 된다. 그제야 당황한다. 축하 잔치의 짧은 여흥만을 생각했지, 잔치 뒤의 긴 시간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나 출세 같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의 총량을 과대평가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행복의 지속성측면을 빼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상가 라 루시프코가 400년 전에 지적한대로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승리의 환희도 패배의 아름도 놀라울 정도로 빨리 무뎌지지만, 우리의 머리는 이 강력한 적응의 힘을 감안하지 않고 미래를 그린다. 그래서 항상 오버를 한다. 이것을 가지면 영원히 행복하고, 저것을 놓치면 너무도 불행해질 것이라고. (---)

이렇게 미래를 과도하게 염려하고 또 기대하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산다. 대다수 한국인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고등학생은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생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중년은 노후 준비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산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다. 인생은 유한하다.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결국 인생사다. 사람들은 상당 부분을 부와 성공 같은 삶의 좋은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쓴다. 이런 것을 소유해야 행복이 가능하리란 강한 믿음 때문에. 하지만 여기서 기대만큼의 행복 결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수십 년 연구의 결론이고, 이 현상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적응이라는 녀석이 지목되었다.

(서은국, 행복의 기원)

'효도에 관한 좋은 문장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의 발견  (0) 2021.04.20
영예로운 노년  (0) 2021.04.13
자연스러운 감정  (0) 2021.04.06
이상적인 파트너  (0) 2021.04.05
성탄제  (0) 2021.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