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정의당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을 보고)

이효범 2021. 1. 26. 20:33

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정의당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사건을 보고)

 

구녕 이효범

 

 

그렇게 춥던 날씨가 이틀 동안 이렇게 따뜻해졌습니다. 마치 만주 길림성 벌판 눈밭 위에 있다가 비행기 타고 태국의 파타야 해변 가에 간 것 같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봄이 올 것입니다. 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고 새들도 사랑을 노래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신문에는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사건이 일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장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피해자다움가해자다움은 결코 존재하지 않고, 누구라도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데 실패하는 순간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아마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등 정치인 그리고 고은 등 예술인과 배우들 그리고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의 모든 대상자들이 문제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사람간의 관계를 잘 맺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도 살아있는 여자와 남자간의 관계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유교의 五倫에는 夫婦有別, 朋友有信, 長幼有序는 있어도, 장성한 남자와 여자간의 관계에 대한 덕목은 없습니다. 부조리를 말한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사물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즉 자기(卽自, an-soi)인 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의식할 수 있는 對自(pour-soi)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視線을 통해 자신은 自由를 가진 대자로 남아 있으면서, 타인은 자유가 없는 대상 즉 즉자로 장악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르트르에 의하면 남녀 간의 관계를 넘어 사람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투쟁의 관계이고, 타인은 곧 지옥입니다. 그러나 나와 너를 쓴 마틴 부버에 의하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관계를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관계에는 두 종류의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그것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나-너의 관계입니다. 그것의 관계는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처럼 목적과 수단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이며, 목적이 충족되면 관계가 즉시 끝납니다. 이에 반해 나-너의 관계는 인격 대 인격의 만남으로, 이런 관계를 통해 우리는 量的인 만족과 불만족이 아닌 質的인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짐승에서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부버의 말대로 인간은 자기의 결점까지도 용기 있게 들어내 놓고 또 그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와 존재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진정으로 인간적인 내면을 갖추기 시작하고, 인간은 진심으로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과 연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의식(정신)의 존재이기도 하지만 또한 육체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몸은 기본적으로 생물적인 본능에 충실합니다. 생물적인 본능은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끝없이 욕망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인간에게는 5단계의 욕구가 있다고 말합니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자기 존중의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가 그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생리적 욕구는 성과 같이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욕구이며,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욕구이기도 합니다. 생명체는 생명이 있는 한 이런 욕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이런 욕망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고통의 근원인 애욕을 끊으라고 하지만 그것은 범인이 도달하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경지입니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절대적인 종교의 세계가 아닌 이 상대적인 세속의 세계에서는 성적인 욕구야말로 생명의 다채로움을 만든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은 추한 행동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입니다. 부모의 아름다운 성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청춘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우며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진화심리학에 의하면 금성에서 온 여자와 화성에서 온 남자는 사랑을 대하는 것에서도 매우 차이가 납니다. 이형접합(여성의 난자는 남성의 정자보다 85,000배 더 크고 개수는 적다, 정자는 유전정보와 추진기관에 해당하는 꼬리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난자는 유전정보와 함께 수정란이 자라는 데 필요한 여러 소기관과 영양분을 가지고 있다)과 여성의 체내 잉태 (internal gestation) 때문에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적은 후손을 보게 됩니다. 여성은 평생 400개 정도의 난자를 생산합니다. 이 중 20개만이 건강한 아기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남자는 한 번 사정할 때마다 약 1억 마리의 정자를 방출합니다. 그 결과 남자의 적응도(fitness, 자연선택에 대한 개체의 유리함을 나타내는 척도, 다음 세대에 남기는 자손의 수로 측정됨) 변량이 여자의 경우보다 훨씬 더 큽니다. 역사적으로 여자의 경우 19세기 러시아 소작농의 아내 피오도르 바실리예프가 69명의 아이를 낳았다는 기록이 있는 반면에, 남자의 경우 모로코의 마지막 셰리프인 물레이 이스마일은 적어도 700명의 아들과 342명의 딸을 두었습니다. 그것도 세다가 그만 둔 것이 그 정도입니다. 이런 차이가 남자와 여자의 성의 차이로 귀결됩니다. 남자 간에 적응도 변량이 크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경쟁심이 강하고 난폭합니다. 남자는 배우자를 얻으려고 서로 경쟁한 결과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반면에 여자는 이점이 훨씬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최고의 유전자를 가진 남자를 식별해낼 수 있을 때까지는 수줍어하고 주저할수록 더 유리합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임신 후에 자신들과 함께 머물 가능성이 높은 남자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남녀의 성의 차이가 남녀의 다른 성적 신호체계를 만들어냅니다. 남자는 성적인 뉘앙스가 없는 상황에서도 성적인 관심이 있다고 추론하는 경향이 여자에 비해 큽니다. 이런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마타 하셀톤과 데이비드 버스((Martie G. HaseltonDavid M. Buss)는 오류관리이론( Error Management Theory)을 제안했습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의사결정은 잘못된 추론을 낳으며, 그 중 몇몇 오류는 그 결과에서 다른 오류에 비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듭니다.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과 자웅선택은 오류의 총 횟수보다는 오류로 인한 대가의 총량을 최소화하는 추론 체계가 진화하는 것을 촉진해 왔습니다. 여자가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 데 있다고 착각하는 긍정 오류를 저지른 결과, 남자는 거부를 당하거나 비웃음을 살 수 있고 어쩌면 뺨을 한 대 얻어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데도 없다고 생각하는 부정 오류의 결과는 성관계를 가져서 남자의 번식 성공도(reproductive success, 한 개체가 평생 동안 낳는 자식 수)를 높일 기회를 잃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 치르는 대가는 전자보다 훨씬 큽니다. 따라서 남자는 여자가 남자를 향해 보이는 성적관심을 과대평가하도록 끊임없이 유도하는 인지적 편향성을 갖도록 선택되었습니다. 반면에 여자는 자신을 향한 남자의 애정 어린 헌신을 과소평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긍정 오류를 저지른 대가(남자가 자기에게 열의가 없는데도 확고한 연인 사이라고 착각한 상태로 그의 아이를 가진 뒤 그에게 버림받는 것)가 부정오류를 저지른 대가(남자가 자기에게 열정적으로 푹 빠져 있는데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나머지 확고한 연인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남자 학부생 중 처음 보는 매력적인 여성이 접근해오면 성관계를 갖겠다고 한 비율은 75%이고, 여자 학부생은 0%입니다. 남자가 평생 동안 원하는 섹스파트너는 평균 20명이고, 여자는 5명 미만입니다. 남자는 누군가와 알고 지낸지 일주일이 지나면 성관계를 갖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반면, 여자는 6개월이 지나야 합니다. 데이비드 버스와 데이비드 슈미트(David Schmidt)는 바람직한 이성을 처음 만난 이래 그 사람과의 성관계에 합의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성차를 조사했습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이상형을 만난 지 5년이 흘렀다면 아마도 성관계까지 진도가 나갔으리라 답했지만, 2, 1, 6개월 등 그보다 짧은 기간이 흘렀을 때 성관계에 합의할 가능성은 언제나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았습니다. 이런 남녀의 성차가 결혼제도에도 반영됩니다. 현재 전 인류의 83.39%가 일부다처제를 실시하고, 16.14%는 일부일처제, 0.47%는 일처다부제를 실시합니다.

장황하게 남녀의 성적인 차이를 말했습니다. 이런 차이는 최초 인류가 탄생한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의 수렵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아무리 문화가 발달해도 쉽게 변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머리로는 어떻게 이성을 대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알더라도 몸으로는 단번에 그것을 체질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골프 선수가 머리로는 어디로 공을 보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는 김종철 대표는 사람 특히 남자의 실상을 모르고 너무 이상적인 가치를 외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인권과 양성평등은 물론 인류가 추구해야 할 지고한 가치인 것은 틀림없지만 결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어려운 목표입니다. 그리고 김 대표는 51 세로 매우 혈기왕성합니다. 결코 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진보진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지는 오류처럼 자기들만이 도덕적으로 하다고 고집합니다. 가치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깊은데, 그들은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는 충실한지 몰라도, 그것 때문에 다른 중요한 가치에는 오히려 맹목적이 되고, 그래서 결국 인생을 파국으로 몰고 갑니다. 그러므로 적폐를 청산하고 남을 탓할 때에는 자기를 먼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그 자리에 없었고 그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비난하는 것은 아닌지 늘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인류가 저지른 을 시정하는 것은 오랜 기간 뼈를 깎는 지속적인 공동의 노력을 집중할 때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요즈음 너무 많이 듣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이라는 말에 암담함을 느낍니다. 성이 마치 죄의 근원인 것처럼 들려 세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남자이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성에 대해 너무 예민하고, 엄격하고, 도덕적인 잣대로만 평가하지 말고, 좀 더 관대하고, 개방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도 여자를 나와 똑같은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여야겠지만, 여자도 남자의 성이 여자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그것이 악질적인 것이 아닌 경우에는 원만하게 처리하는 아량을 가졌으면 합니다. 남녀는 결코 투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로 화합하여 세상을 신명나게 만들어 나가는 짝인 것입니다.

 

202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