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장의 아버지가 서울로 떠나는 날 아침이었다.
“아버지, 제가 아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면 아버지께서 그 힘든 일을 하지 않으셔도 될 텐데······. 부디 몸조심하세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 언젠가는 공사가 끝나는 날이 오겠지. 그 때까지 너도 몸 건강히 기다리고 있거라. 나는 네가 걱정되어 발길이 안 떨어지는구나!”
늙은 아버지와 어린 딸은 서로 안타까워하며 헤어졌다. 아버지가 떠난 후 몇 달이 지났다.
‘아버지는 지금쯤 뭐하고 계실까? 혹시 힘든 일을 하다가 몸이 상하신 것은 아닐까? 보살펴 드릴 사람도 없을 텐데······.’
도리장은 자나 깨나 아버지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을에는 성벽을 쌓는 사람들이 사고를 당해 다쳤다는 등,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 간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젊은 사람도 힘에 겨워서 야단들이라는데, 늙으신 아버지께서 어떻게 견디고 계시는지······.’
도리장은 날이 갈수록 애가 타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 이대로 기다릴 수만은 없어.’
결국 도리장은 아버지를 찾아 서울에 가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러고 있는 동안에 아버지께 무슨 나쁜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래, 나라도 가서 아버지를 도와 드리자, 나 아니면 이세상의 그 누가 아버지를 생각할 것인가!’
어린 소녀의 몸으로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이 불안했던 도리장은 생각 끝에 남자 옷차림을 하고 길을 떠났다. 전라도 땅에서 서울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아버지도 이 먼 길을 걸어가셨겠지. 그 지친 몸으로 또 중노동을 하셨을 테니, 늙으신 몸이 어찌 온전하실까?”
도리장은 부르튼 발을 보며, 아버지 생각에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며칠 후 도리장은 천안에 이르렀다. 천안 삼거리에 늘어진 버드나무 밑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늙스그레한 남자 한사람이 다가와 곁에 앉으며 물었다.
“ 어디로 가는 길이오?”
“예, 서울에 갑니다.”
“나는 성을 쌓으러 가는 길이라오. 집에는 어린 딸아이 하나만 남아 있는데, 나라에서 시키는 일이니 어쩔 수 있소? 어린것을 두고 떠나오니 마음이 안 놓여서·····.”
그 사람은 묻지도 않는 말을 술술 털어놓았다.
“저도 성 쌓는 곳으로 가는 길이니 같이 가시지요.”
“좋소. 갈 길이 먼데 길동무가 생겨서 잘됐소.”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났다.
“참으로 곱게 생겼구려! 나이가 몇이나 되오?”
“열여덟입니다.”
“꼭 색시같이 곱게 생겼으니, 험한 일을 하려면 고생이 여간 아니겠소.”
노인의 말에 도리장은 좀 당황 했지만, 곧 침착한 목소리로 꾸며서 말했다.
“생김새와는 달리 기운은 있습니다. 노인들도 하는 일인데 젊은이가 못 할 리 있겠습니까?”
“허허허, 그렇군!”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은 서울 가까이까지 왔을 때였다. 길가 여기저기에서 정신을 잃고 쓰려져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 사람들은 왜 길가에 쓰러져 있을까요?”
“글쎄, 집을 떠난 지 오래 된 사람들인지 모두들 몰골이 말이 아니로군.”
궁금해지니 두 사람은 지나가던 동네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다.
“저 사람들은 모두 성을 쌓으러 왔던 사람들이라오. 성을 쌓다가 다친 사람도 있고 병이 들어 일을 못 하게 된 사람들도 있지요.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길에서 죽게 생긴 사람들이라오.”
동네 사람의 말을 들은 도리장은 깜짝 놀랐다.
‘혹시 아버지도 저런 신세가 되신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도리장은 한시도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도리장은 길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 살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얼마쯤 앞으로 나아갔을 때였다. 길가 한편에 낯익은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혹시······!”
도리장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굶주림과 병으로 눈이 푹 꺼진 노인의 얼굴을 자세히 들어다 보았다.
“아버지! 아버지······!”
도리장은 그 노인을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젊은이 누구요?”
“아버지, 저에요. 도리장이 왔어요.”
처음에는 남자 옷을 입은 딸을 알아보지 못하던 아버지는 그제야 놀라움과 반가움에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대신 제가 일을 하려고 왔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세요? 하지만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를 부축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도리장은 정성을 다해 아버지의 병간호를 했다. 아버지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도리장의 지극한 효심을 칭찬했다. 그 소문은 궁중에까지 들어갔다. 임금님은 도리장의 효심을 기리는 정문을 세워주고 큰 상을 내렸다. <도리장의 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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