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에 관한 좋은 문장들

아버지의 하얀 운동화

이효범 2020. 12. 14. 07:52

평생 동안 혼자 걷지 못하고, 목발에만 의지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의족을 끼우고, 힘든 걸음마를 연습하기 시작한 건 맏이인 내가 결혼 이야기를 꺼낼 즈음이었습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방바닥에 넘어지곤 하셨어요.

그래도 너 결혼식 날, 이 애비가 손이라도 잡고 들어가려면 다른 건 몰라도 걸을 순 있어야지.”

사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그냥 큰아버지나 삼촌이 그 일을 대신 해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어요. 신랑에게, 그리고 그의 부모님과 친척들, 친구들에게 의족을 끼고 절룩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결혼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한숨만 푹푹 나왔죠. 결혼식 날 아버지가 넘어지진 않을까? 신랑 측 사람들이 수군거리진 않을까……. 드디어 결혼식 날, 일찌감치 집을 나서는데 현관에 놓인 하얀 운동화가 눈에 띄었습니다.

누구의 신발일까?’

경황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긴 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어요. 아니나 다를까, 결혼식장에서 만난 아버지는 걱정했던 대로 그 하얀 운동화를 신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어요.

아무리 힘이 든다 해도 잠깐인데 구두를 신지 않으시고선…….’

하객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진땀을 뻘뻘 흐리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난, 결혼식 내내 하얀 운동화 생각뿐이었어요. 도대체 누가 그런 운동화를 신으라고 했는지, 엄마일까? 왜 구두를 안사시고? 누구에겐 지도 모를 원망에 두 볼이 화끈거렸죠. 아버지의 무안한 듯 표정도, 뿌듯해 하시는 미소도 미처 보지 못 하고 그렇게 결혼식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지 불과 얼마 후,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으시고 천천히 말을 이으셨어요.

느이 남편에게 잘 하거라. 니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사실 난 네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단다. 그런데 니 남편이 매일 같이 날 찾아와 용기를 주었고, 걸음 연습도 도와주더구나. 결혼식 전날에는 내가 넘어 질까봐 푹신한 고무가 대어진 하얀 운동화도 사다 주고, 조심해서 천천히 걸어야 한다고 얼마나 당부를 하던지난 그때 확실히 알았다. 니가 좋은 사람 만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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