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골프
구녕 이효범
골프를 보라.
복싱처럼 사람 얼굴을 가격하는 것이 아니라
고무로 만든 딱딱한 공을 가격하는 것이다.
축구처럼 발로 무지막지하게 차는 것이 아니라
채를 들어 손으로 정교하게 때리는 것이다.
야구처럼 때리고 정신없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처럼 여유롭게 걸어가는 것이다.
양궁처럼 과녁에 내리꽂는 것이 아니라
앙증맞은 구멍 속에 살며시 밀어 넣는 것이다.
필드에 나와 골프를 해보라.
골프는 동료와 함께 어울리지만
혼자서 외롭게 자책하는 운동이다.
골프는 14개의 채를 화사하게 구사하지만
머리를 들어 결과를 미리 알려고 하지 않는 운동이다.
골프는 하늘과 땅과 바람과 비를 염려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가는 길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런 골프를 하다 보면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도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골프는 신사가 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골프는 신사가 되는 운동이다.
후기:
언제부터인지 골프는 권력 있고 돈 많은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 아니고, 善男善女가 즐기는 대중 운동이 되었습니다. 골프를 하다가 필드에서 죽는 것이 꿈이라는 40대 중반의 여자 골프 마니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유한마담도 아니고 럭셔리한 차도 굴리지 않는 건실한 생활인인데,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골프에 홀딱 빠져 있었습니다.
사실 모든 운동에는 빠져들 만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헌신하는 추종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프로나 선수 말고 아마추어로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속상하겠지만 아깝게 져도 훌훌 털고 다시 할 수 있고, 어제보다 못해도 허허 웃으면서 자신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골프는 확실히 매력적인 운동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비록 대중운동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비용 때문에 조금은 망설여집니다. 그러나 늦기 전에 결단하십시오. 골프는 나이가 들어서도 오랜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긴 하루를 보낼 수 있고, 잘 가꾸어진 전망 좋고 공기 좋은 필드를 적당히 걸을 수 있어 몸과 마음에 참 좋습니다. 아까운 돈을 낸다고는 하지만,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서 병원이나 약국에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남는 장사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고 그 남는 돈으로 19홀을 시도한다든가, 내기 골프를 하여 혈압이 올라가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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