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가물치
구녕 이효범
해산한 아내을 위해 묻고 물어 시장 한 모퉁이 가물치를 찾았더니 아주머니 빙그레 웃으시며 누런 종이에 물 몇 모금 적셔 꾹꾹 말아 검정 비닐 봉지에 싸주시네 오는 길에 책방에 들렀더니 가물치는 놀란 듯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시집 앞에 섰던 단발머리 소녀가 해맑은 눈을 동그랗게 뜨네 소녀는 알 리가 없지 이것이 가물치인 걸 설령 보여준다 해도 모를 거야 언젠가 그녀도 이것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징그럽고 두툼하고 미끄러운 가물치를 씻어 들통에 넣고 기름을 붓고 가스불 위에 올렸더니 잠잠하던 가물치는 화들짝 기겁을 하네 온 힘으로 뚜껑을 누르며 가물치의 운명을 생각한다 너는 어느 강에서 나서 누구의 손을 거쳐 아내의 허기진 배를 위해 여기에 와 있는가 친구들은 수초 사이에서 맘껏 뛰놀 이 시간에 하필이면 여기에 와 화형당하고 있는가 힘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너는 지금 지글지글 불 위에 있다 힘이 좋은 걸 언제나 장땡으로 알지만 가물치 넌 힘이 없어 아내에게 미안했던 내게 위한이 된다 남자들이여 힘 좋다고 뽐내지 말아라 가물치의 교훈은 위대하다 들통이 조용하고도 한참이 지난 후 조심스레 뚜컹을 열었더니 등은 바닥으로 깔리고 허연 배가 하늘로 솟구쳤네 죽음은 등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삶과 다른 모습으로 여기 현현했지만 묵상하기에 앞서 가만히 생각해보자 얼마 후 아내는 가물치 너를 먹겠지(내 몫은 없을거야) 너는 아내의 부족한 부분으로 가 그녀를 강하게 만들겠지 너는 지금 죽었지만 곧 새로운 몸으로 부활할 거야 너는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다른 세계에 와서 새로운 모습으로 내게 오겠지 그때는 힘 대신 웃음으로 올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