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여행기

대전고 51회 캐나다 로키 트레킹3

이효범 2023. 7. 26. 06:44

o 대전고 51회 캐나다 로키 트레킹3

 

구녕 이효범

 

단잠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어젯밤에 큰비가 내렸는지 거리가 아직 젖어있고 나무들이 세수를 한 듯 산뜻하다. 모처럼 하늘도 푸르다. 지난 이틀 동안은 먼 데서 난 산불의 연기가 하늘을 덮어 그리 맑지 못했다. 하늘이 맑으니 마음까지 밝아온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하는 날이다. 목표는 대머리 언덕, 볼드힐(Bald Hill) 트레일이다. 산행거리 12km, 소요시간 6시간이다. 우리는 630분 호텔에서 조식도 하지 않는 채 출발했다. 호텔 식사 시간이 늦기 때문에, 7시에 문을 여는 시내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그리고 차에 오르면서 점심으로 딸랑 누드김밥 하나를 받았다. 차는 악마의 호수라는 멀린 호수로 향했다. 오르는 산 양쪽으로는 실 바늘을 세워놓은 것처럼 빽빽하게 전나무들이 울창하다. 호수로 오르는 길가에서 우리는 행운인 듯 야크 7마리를 보았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호수 가까이 가니까 불에 탄 나무들이 형체만 남긴 채 온 산을 덮고 있었다. 이제사 캐나다 산불이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이 났다.

 

우리는 해발 1690m의 멀린 호수(Maligne Lake)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피트니스 강사이기도 한 가이드 윤대장을 따라 체조로 몸을 풀었다. 이 체조는 골프하기 전에 하는 운동과는 시간과 질이 달랐다. 앞으로 우리 등산 모임에 공식 체조로 도입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산행의 처음 시작은 잔잔한 오르막이었다. 우리나라 임도를 걷는 기분이었다. 촉촉이 젖은 산길은 촉감이 좋았지만 울창한 숲으로 주변을 볼 수 없어서 답답했다.

 

트레킹의 진경(珍景)은 수목한계선에 가까워지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멀리 왼쪽의 퀸 엘리자베스 연봉 밑으로 푸른 뱀처럼 호수가 길게 누워 있다. 이 호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빙하 호수이면서 로키 지역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오른쪽으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깊은 협곡이 펼쳐져 있다. 우리는 대머리 이마 부분에서 많은 사진을 찍고, 콧등처럼 좁은 능선을 타고 양쪽 비경을 감상하면서 2320m 정상으로 향했다. 바람이 온몸을 싸늘하게 했다. 가지고 간 모든 옷을 꺼내 입었다. 왼쪽 지자(知者)의 호수와 오른쪽 인자(仁者)의 협곡을 바라보는 재미가 아찔하면서 쏠쏠했다. 우리는 정상에서, 바람 잔잔한 바위를 선택해서, 진택의 조그만 음악박스에서 나오는 안동역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으로 김밥의 선택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역시 우리는 동양인이다. 마른 것보다 젖은 것이 입맛에 맞는다. 점심 후 보온병에 싸간 뜨거운 커피를 나누어 마시는데, 깔끔을 떠는 봉현은 입술을 대지 않고 마시다가, 그 뜨거운 맛에 비명을 질렀다. “, , .”

 

우리는 8자형의 길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했다. 캡틴인 원영은 연신 꽃 사진 찍기가 바쁘다. 그것도 모자라서 어제 로키 식물도감 책을 두 권이나 사기도 했다. 원영의 배움의 끝은 어디인가. 우리는 머리가 좋아, 그 수고 위에 올라타기만 하면 될 뿐이다. 나는 사실 속으로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많이 걱정했다. 유일한 믿음은 돈식이었다. 그런데 골프처럼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친구는 빛처럼 쏜살같이 치고 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오기가 났다. 골프에서 밀리는 것도 화가 나는데 등산까지 그럴 수는 없다. 이를 악물고 따라붙었다. 우리의 골프 핸디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 뗏장 속에 묻혀 있다. 언젠가 실력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하산길이었다. 종점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기어코 돈식의 장딴지가 경련을 일으켰다. 그런데 천우신조라고 할까. 바로 옆에 진택과 봉현이 있었다. 다행히 진택은 쥐가 날 때 취해야 하는 요령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산행은 5시간 30분 만에 준수하게 마칠 수 있었다.

 

산행을 마치고 우리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 있는 골든(Golden)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조금 차를 달리니까 주변이 깜깜해지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찔했다. 산중에서 이번 큰비를 맞았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비가 계속 퍼부었다. 버스는 어제 제스퍼로 간 길인 93번 국도를 거꾸로 달려 남쪽으로 향했다. 골든 가는 도중에 우리가 보기로 한 아사바스카(Athabasca) 폭포가 나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폭포 1000m를 남겨놓고 비가 그쳤다. 넓게 흐르던 아사바스카 강이 이곳에서는 거인의 목구멍처럼 좁은 협곡으로 거칠게 떨어진다. 우리가 폭포를 그냥 지나쳤다면 평생에 후회했을 25m 낙하의 기기묘묘한 폭포였다.

 

인생에는 행운이 뒤따르면 불행을 오는 법이다. 차가 신나게 달리다가 윌콕 고개를 넘으니까 엄청난 트레픽이 걸렸다. 공사 중인 도로를 만난 것이다. 짧은 그곳을 지나는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이때 우리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이 시대의 마지막 낭만주의인 진택이다. 그의 음악박스에서 최신 유행곡이 흘러나왔다. 심수봉의 남자는 항구, 여자는 배로부터 시작하여 외나무 다리’ ‘님의 향기등 무려 우리의 심곡을 울리는 7곡이 차 안의 막막한 분위기를 깼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친구가 최근에 경험한 쌀참새(?) 같은 여인과의 연애담은 우리의 부러움을 샀다.

 

마침내 비를 맞으며 골든에 도착했다. 예전에 금광이 있던 산골짜기 마을이다. 저녁은 캐나다 사람들이 명절에 먹는다는 터어키(칠면조) 요리였다. 우리가 맛보기 어려운 요리이다. 봉현이가 비싼 와인을 쏘았다. 그러나 우리는 밥과 술만 찾는 천박한 산악인이 아니다. 만찬을 즐기면서 오늘 산행에 대해 3분씩 소감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다들 수준 높은 멘트였다. 역시 우리는 백두산이다. ‘백살까지 두발로 산행을할 친구들임에는 틀림없다.

 

내일은 오늘보다 난이도가 높은 트레킹이다. 날씨는 예측하기 어렵다. 너무 과한 욕심일까, 내일도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 지금 2차로 술판이 시작된 방에서 빨리 오라고 난리이다. 그런데 가지 전에 한 가지 할 일이 남았다. 제 여행기를 본 우리 친구 어부인 중 가장 아름답고 지성적인 독자 한 분이, 시가 들어가는 산행기가 조금 더 품위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셨다. 나는 지금 인터넷을 오래 써치할 수 없고, 이 산행과는 어울리는지 확신할 수 없으나, 제가 알고 있는 시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그 시는 우리처럼 여행을 좋아했던 보들레르의 여행으로의 초대이다. 그의 악의 꽃에 나오는 시이다.

 

아이야, 누이야,/ 꿈꾸어보렴/ 거기 가서 함께 살 감미로움을!/ 한가로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으리,/ 그대 닮은 그 고장에서!/ 그곳 흐린 하늘에/ 젖은 태양이/ 내 마음엔 그토록 신비로운/ 매력을 지녀,/ 눈을 통해 반짝이는/ 변덕스런 그대 눈 같아.//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 그리고 쾌락뿐./ 세월에 닦여/ 반들거리는 가구가/ 우리 방을 장식하리;/ 진귀한 꽃들,/ 향긋한 냄새,/ 용연향의 어렴풋한 냄새가 어울리고,/ 호화로운 천장,/ 깊은 거울,/ 동양의 찬란함,/ 모든 것이 거기선/ 넋 에 은밀히/ 정다운 제 고장의 말 들려주리.//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 그리고 쾌락뿐.// 보라, 저 운하 위에/ 잠자는 배들을,/ 떠도는 것이 그들의 기질;/ 그대의 아무리 사소한 욕망도/ 가득 채우기 위해/ 그들은 세상 끝으로부터 온다.// -저무는 태양은/ 옷 입힌다, 들과/ 운하와 도시를 온통/ 보랏빛과 금빛으로/ 새상은 잠든다./ 뜨거운 빛 속에서./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 그리고 쾌락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