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 51회 동문 북해도 부부 여행 3
o 대전고 51회 동문 북해도 부부 여행 3(7월 5일)
구녕 이효범
골프할 때 중요한 세 가지는 날씨와 동반자와 캐디이다. 캐디에게 절대복종하는 것이 점수가 잘 나오는 비결이다. 그러면 내기 골프에서 돈을 많이 세이브할 수 있다. 여행에서도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날씨와 동반자와 가이드이다. 이번 우리 여행의 가이드인 손(양기)상은 단연코 최고이다. 애국심도 충만하고, 지식도 풍부하며, 언변과 제스처도 압도적이다. 우리는 열렬히 그를 서초구의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라고 권고했다.
그런데 그가 커다란 실수를 했다. 우리가 도야호수 유람선을 승선하기 전에, 칼데라 호수의 풍광을 감상하고,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고, 시간이 남으면 2층 선실에 앉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를 하시면 어떠겠냐고 제안했다. 학교 시절에 모두 범생이었던 우리들은 그 지시에 따라 선실에 앉아 논의를 시작했다. 논의는 너무나 진지해서 50분 탑승 시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갑판에 나가지 않고 열띤 논변을 이어갔다. 거기에서 나는 우리 친구들의 미래 계획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리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의미있게 살 것인가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다. 우리가 그의 ‘농촌 일기’를 통해 잘 알다시피, 권대원 친구는 농촌에 장만한 삶의 터전으로 흔들리지 않게 충만한 삶을 살 것이다. 졸업하고 처음 만나 서먹했던 김관섭 친구는 이슬람교가 지배하는 중동에 선교사로 나갈 계획을 말했다. 모든 준비를 착실히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송영각 친구는 내년 봄에 부부가 23일 동안 프랑스로 자유 여행을 떠나기 위해 비행기표를 끊었다고 말했다. 예술과 와인을 주제로 하는 이 여행은, 버킷리스트(Bucket List) 중의 하나라고 고백하는 그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수많은 길이 있을 것이다. 육체와 상관없이 정신은 언제나 청춘이다. 내면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가슴이 울렁거리는 일을,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부부가 용기 있게 도전하는 것만이 후회가 적은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도야 호수 옆에 위치한 쇼와신잔(昭和新山)은 높지는 않지만, 고구마같이 생긴 특별한 산이었다. 말 그대로 쇼와 시대에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산으로, 지금도 표면이 섭씨 300도로, 활동하고 있다. 그 앞에는 미마츠마사오(三松正夫)의 동상이 서 있다. 이 사람은 이 지역 우체국장이었다. 그는 보리밭에 산이 솟아오르자 실의에 빠진 집주인에게 퇴직금을 몽땅 주고 그 땅을 샀다. 그리고 매일 같이 관찰하면서 산의 변화를 자세히 기록하였다. 그 노인은 이 땅의 가치를 알아보고, 인생의 마지막을 이 산과 함께 찬란하게 보낸 것이다. 나는 우리가 앞으로 살아야 할 모범 답안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사이로 전망대에 들려 간단한 쇼핑을 하고, 배에서 보지 못했던 호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대전시의 자매도시인 삿포로(札幌市)로 들어오는 길에 노보리베츠 지옥 계곡을 걸었다. 온천에서 품어나오는 유황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그러나 그렇게 심하진 않았다. 푸른 생명이 살기 어려운 팔팔 끓는 괴상한 불의 계곡이 지옥을 연상시켰다. 삿포로 시내에 들어와서는 오오도리 공원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꽃들이 가득하고 사람들이 가득한 매력적인 공원이었다. 위도가 높은 추운 지방에서는 여름이 짧기 때문인지 꽃과 잔디들이 더욱 눈부시다. 길에서 노래하는 가수들도 있었고, 노천에서 맥주를 마시며 넘어가는 아름다운 저녁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노인들도 많았다.
이 공원 가까이에는 삿포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자 삿포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인 삿포로시 시계탑이 있다. 이 건물의 정식 명칭은 구 삿포로농학교 연무장이다. 즉 옛 학생들의 연무(演武)나 입학식, 졸업식 등 때 사용하던 중앙강당 역할의 건물이었다. 1876년에 설립된 삿포로농학교를 전신으로 홋카이도 대학이 설립되었다. 우리가 이번 여행에는 들리지 못했지만, 이 대학 안에는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흉상이 유명하다. 그는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많이 들었던,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라는 명언을 한 학자이다. 그는 미국의 매사추세츠 농업대학(현 매사추세츠 대학교)의 총장을 지내고 그 후, 홋카이도의 개척을 위하여 삿포로농학교에 초빙되어, 삿포로농학교(현 홋카이도대학) 초대 교두(敎頭)로서 농학, 식물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을 영어로 가르쳤으며, 선진 낙농업을 홋카이도에 정착시켰다. “Boys, be ambitious! Be ambitious not for money or for selfish aggrandizement, not for that evanescent thing which men call fame. Be ambitious for the attainment of all that a man ought to be, 소년이여, 아먕을 가져라! 돈이나 이기심을 위해서도,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단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추구하는 야망을.” 이것은 클라크 박사가 기타히로시마시 시마마쓰 역체소(驛遞所)에서 삿포로농학교 학생들과 송별하며 남긴 연설문이다.
소년만 야망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에는 노인에게도 야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나이에, 클라크가 말하는 덧없는 명성이 아니라, 사람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혹시 현 재경 51회 동창회 회장단께서 다시 한번 이런 멋진 여행을 마련해주신다면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