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 51회 동문 북해도 부부 여행1
o 대전고 51회 동문 북해도 부부 여행 1(7월 3일)
구녕 이효범
재경 51회 카톡방에 일본 북해도 여행 투표를 마감하는 공지가 나가자, 황성연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멋지고 안전한 북해도 여행을 기원합니다. 효범 친구의 달달한 기행담도.” 황성연 친구는 대전고 전체 동문회의 골프 감독이다. 감독의 명령을 어겼다가는 앞으로 자주 보는 오일회 골프 모임에서 신세가 고달프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여행담을 써보기로 한다.
이번 북해도 여행은 부부 17팀과 6명의 싱글로, 총 40명이 참가했다. 부부팀은 고선근 강정실, 권대원 이은희, 박수전 윤영진, 배재문 최순이, 송영각 김소영, 신영철 송은경, 오원근 유복진, 이광원 심은숙, 이효범 민영순, 장기풍 노철희, 장원영 김혜경, 정광우 홍순, 정근창 췌야핑, 정하용 박영미, 한관우 최복규, 홍순관 남소희, 황인방 황영희이고, 싱글은 김관섭, 김동주, 김양중, 변충헌, 손중기, 유각균이다. 대단한 인원이다. 이것도 늦게 신청하여 가지 못한 친구들을 뺀 숫자이다. 대전 C 고등학교 졸업생인 내 친구가 40명이 간다고 하니까, 믿기어지지 않는지 놀라는 기색이었다.
북해도는 일본 열도를 이루는 4개의 주요 섬( 혼슈, 시코쿠, 규슈, 홋카이도)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섬이다. 그래서 우리는 홋카이도를 ‘北海島’라고 섬 ‘島’로 쓰기 쉬우나, 사실은 일본 행정명인 ‘道’를 쓴다. 이 섬은 메이지 유신 즈음에 일본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다. 그 이전에는 털이 많고 몽고반점이 적은 아이누족들이 살았다. 이 섬은 남한 영토의 4/5 크기로 가오리같이 생긴, 세계에서 21번째로 넓은 섬이다. 또 이 섬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 세계 최대 다설지역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 중심부에 있는 삿포로(札幌市)에서는 우리보다 먼저 1972년 동계 올림픽이 열리기도 했다.
우리가 타는 진에어 비행기는 8시 15분 출발하기 때문에, 아침 6시까지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와서 수속을 밟아야 했다. 제시간에 도착하기 매우 힘든 이른 시간이었다. 다행히 대전과 세종은 4시 이전에 출발하는 첫차가 있었다. 그런데 남양에 사는 변충헌 친구나 과천의 정광우, 홍순관 친구는 택시를 타야 했고, 최악인 경우는 안성에 사는 손중기 친구로, 어쩔 수 없이 차를 끌고 잠실에 사는 유각균 총무 집에 와서 시간에 맞추어야 했다. 어떻게 그런 불편한 시골에 사는지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예정된 10시 50분에 치토세 공항에 내렸다. 기온은 섭씨 21도, 구름이 덮여 있어 강한 햇살이 내리쬐지 않는, 여행하기에는 최상의 날씨였다. 우리는 1시간 30분 고속도로를 달려 오타루로 이동했다. 몇 개의 터널을 지났다. 터널은 비좁고 밝지 않아 우리의 예전에 만들어진 터널의 느낌이 났다. 그러나 고속도로나 지방도로 그리고 시내도로 온통 주변 어디를 둘러보아도 쓰레기 하나 없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강박적인 청결로도 보이지만 부러운 현상임에는 틀림없다.
오타루에 들어오자마자 점심을 먹었다. 그 옆에는 슈퍼가 있어 모두 간단한 쇼핑을 했다. 점심 후에 오타루 관광지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박수전 회장의 어부인께서 쇼핑한 감자튀김 스낵을 한국의 것과 비교하시라며 돌렸다. 아! 나는 박수전 친구가 사회에서 성공한 이유가 바로 이런 내공에 있었구나 하는 점을 직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발견은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우리 동기 중의 유일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김동주 친구가, 그 짧은 시간에 흔들리는 차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우리가 사적으로 부담해야 할 여행 경비를 거출했다는 사실이다. 그 결단력과 과감성은 평생 뼈를 깎는 훈련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오타루는 옛 러시아와 중국과의 교역의 항구로서, 지금은 운하와 유리공업과 오르골의 고장이다. 오르골은 자동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기계장치이기도 하고, 수동으로 손잡이를 돌려 연주하는 장치이기도 한 뮤직 박스(music box)이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Orgel’(오르간을 의미하는 독일어)에서 따와 ‘ォルゴ-ル’이라고 불렀는데, 우리도 이것을 그대로 표기한다. 서양 문물이 일본을 통해 들어왔으므로 우리는 일본 사람들이 쓰거나 만든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즐겨 먹는 ‘카스테라(카스텔라)’도 그렇다. 이 케이크는 포르투갈어로 ‘성(城)’을 뜻하는 카스테이라(Casteira)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을 포르투갈 상인들이 16세기 중반 나가사키에 들여와 처음 전파하면서, 일본식 이름으로 굳어졌다. 내가 전공하는 ‘철학(哲學)’이라는 개념도 일본학자들이 ‘philosophy’라는 개념을 번역한 것이다.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저녁 호텔에서 한 저녁 행사와 만찬이었다. 우리는 만찬을 하기 전에 ‘카가미 와리’라는 축하 행사를 했다. 이것은 보통 일본에서는 신년 하례식 같은 축제 때 하는 행사로서, 나무에 든 술통에 거울과 같은 맑은 술을 넣고, 단합을 위한 구호를 외친 다음, 나무망치로 깨는 의식이다. 우리는 ‘장백의 정기 받은 남팔 남아 부부 동반 북해도 여행-대전고 51회 동창회-’라는 프랭카드 아래 모두 기분 좋게 취했다. 오늘 먹은 일본 정식은 내 생애 경험한 미식 체험으로는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이런 성대한 요리는 우리가 낸 값싼 여행 경비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을 공들여 만들어준 집행부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평소에 거의 술을 먹지 않는 우리 집사람이 오늘은 경치와 동반자들에 반했는지, 맥주와 사케를 조금 마셨다. 평소에 그런 기회를 만들지 못한 나로서는 말릴 수 없었다. 만찬 후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만원이었다. 우리방은 6층이었다. 그런데 5층에서 어떤 일본 사람이 내리니까 집사람이 얼른 따라 내리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놀라서 급히 손을 내밀어 엘리베이터 안으로 끌어왔다. 아니 멋진 신랑을 옆에 두고 이국에서 다른 남자를 따라가다니. 이건 말도 안 된다. 내일부터는 내가 먼저 아내 손을 잡고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