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스를 찾아서 2
o (11) 탈레스를 찾아서 2
구녕 이효범
그리스 문화는 아테네보다 먼저 이오니아 지방에서 꽃을 피웠다. 이오니아가 그리스 문화의 발상지였다. 그리고 탈레스가 활동한 밀레토스는 이오니아 지방에 있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수도일 정도로, ‘이오니아의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그리스 문화의 성과는 먼저 문학에서 발휘되었다. 그중에서도 기념비적인 업적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이다.
호메로스의 작품 속에는 제우스를 정점으로 한 숱한 올림포스의 신들이 등장한다. 제신들은 인간과 편을 지어 전쟁놀이를 한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유일신관(唯一神觀)에서 보이는 절대적 신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들이 인간과 다른 점은 고작 힘이 세고 불사(不死)하다는 점뿐이다. 그런 점에서 올림포스의 신들은, 자연 및 인간사회의 여러 가지 현상과 인간의 온갖 감정을 그대로 인격화시킨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의인화(擬人化)된 신화도 마법의 시대보다는 훨씬 진보된 인간 지식의 산물이다. 그리스 이전의 종교는 마법적(magical)이었다. 마법적 세계에서는 세계의 진행과 모든 현상이 악령들의 악의에 찬 장난으로 발생한다. 이런 악령들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마법이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인간을 닮은 신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들이 적어도 인간적이라고 믿음으로써, 터무니없는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여기에 더 나아가 호메로스의 작품 속에는 인간(영웅)의 위대함이 나타나고 있다. 트로이아의 용사 헥토르는 자기의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결전장에 뛰어든다. “하지만 아니야,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명예롭지 못하게 죽고 싶진 않아. 뭔가 훌륭한 행동을 하고 죽었음을 후세의 사람들로부터 듣도록 하고자 죽고 싶어.”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도 이 ‘용기(andreia)’라는 가치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사내다운 용감한 인간이 그 당시의 훌륭함의 지표였다. 호메로스는 이런 인간의 훌륭함이, 인간의 영광이, 인간의 위대함이 실현되는 곳이 이 세계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호메로스가 묘사하는 문학 속에서 인간은 이전보다 더 개성 있고, 합리적인 사고에 근접했음을 알 수 있다.
합리적 사고는 결국 신화적 사고에 만족하지 않는다. 합리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번개와 벼락이 제우스의 신나는 무기이고, 사랑의 감정이 아프로디테의 장난스런 농간에 의해 일어나고, 인간의 온갖 재앙이 제우스가 에피메테우스에게 준 판도라 상자에서 기인하며, 바람이 산속의 동굴이나 가죽 자루 속에 갇히었다가 나온다는 설명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제 그리스 사람들은 신화적 사고를 벗어나서 철학적 사고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연의 변화가 멋대로 일 수 없고, 어떤 근거(logos)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믿었다. 그 로고스를 찾으려 한 철학자들이 탈레스를 시작으로 한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변화를 있게 하면서도 그 자신은 변화하지 않는 영원한 것으로서, 그러한 변화를 있게 하는 이법(理法, logos)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려 했다. 그러한 것을 일컬어 그들은 ‘피지스(physis)’라고 했다. 이 피지스는 오늘날 우리들이 이해하고 있는 자연과는 상당히 먼 거리가 있다. 그것은 오히려 ‘근원적인 것’ ‘본질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근원’ 내지 ‘원리’라는 뜻을 가진 ‘아르케(arch̵e͞)’라고 했다.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는 그 피지스(아르케)가 물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는 ‘토 아페이론(to apeiron)’이라고 반박했다. 그것은 물도 아니며, 보통 요소라고 불리는 어떤 것도 아니고, 무규정적인 무한한 물질을 의미한다. 그것은 불사불멸의 영원히 운동하는 물질이고, 이것이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라는 대립물을 낳으며, 이들의 투쟁에 의해 만물이 만들어지지만, 만물은 또 필연적 법칙에 따라 쇠멸하여,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인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을 공기라고 보았다. 공기는 고를 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기는 희박함과 촘촘함에 따라 달라져서, 차가운 것, 뜨거운 것, 그리고 움직이는 것에서는 보인다. 그것은 언제나 운동한다. 공기가 희박해지면 뜨거워서 불이 되지만, 촘촘해지면 차가워져서 바람이 되고, 그다음에는 구름이 되며, 더욱더 촘촘해지면 물이 되고, 그다음에는 흙이 되고, 그다음에는 돌이 된다. 그리고 그 밖의 것들은 이것들로부터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