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걸어서 출근하기

이효범 2023. 6. 1. 18:16

(수필1) < 걸어서 출근하기>

 

구녕 이효범

 

직장이 서쪽에 있는 것은 행운이다. 나는 40년 동안 동쪽에 있는 대전 집에서 서쪽에 있는 공주대학까지 자가용으로 출퇴근했다. 태양을 마주보고 운전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뜨는 해를 등에 지고 출근하고, 지는 해를 등에 지고 퇴근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퇴직 후에 연구 공간을 마련했는데 우연하게도 집에서 서쪽에 위치한다. 그런데 그것이 매우 다행임을 안 것은 오늘 아침이다. 퇴직한 아내의 요구가 점점 무거워졌다. 처음은 청소와 빨래부터 요구하더니, 장보기와 설거지로 이어지고, 결국은 오늘 아침 고기를 구우라는 청천벽력 같은 하명이 떨어졌다. 내가 아침에 고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아내의 요구를 못 들은 척 빵과 우유로 간단히 해결하고 급히 연구실로 향했다. 차를 타려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다가 걸어보기로 했다. 친구들과 7월 캐나다 로키 트레킹이 계획되어 있고,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는 서울의 강남처럼 세종의 남쪽, 금강과 청주에서 내려오는 미호천이 만나는 합강 지역에서 조금 하류 지역에 위치한다. 세계 경제와 우리 고대사와 불교에 두루 능통한 나의 오랜 친구 이재일이 말하는 소위 ()’이 지칭하는 곳이다. 친구와 나는 1969년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사의 불교수련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그곳에는 명초라는 스님이 계셨다. 우리가 연천봉에 올랐을 때, 스님은 등운암 바위에 희미하게 쓰인 글(方百馬角 囗惑禾生)을 가리키시며, 이 글을 해독하면 미래를 읽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정감록에 나온 것처럼, 막연하나마 새 시대가 계룡산에 세워진다는 뜻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도안이나 대전의 학하 지역은 아닐지라도, 이곳 장남평야와 대평리의 금강가에 행정수도가 세워진 것이다. 친구는 계룡산에서 보면 우리 아파트가 강의 뿔의 지역에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믿고 싶은 학설이다. 그리고 나의 연구실은 한국의 권력기관인 중앙관청, 그중에서도 교육부와 아주 가까운 건물에 위치한다. 영원을 추구하는 철학자가 현실 권력과 유착되어봐야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마는, 그런대로 배경은 잠룡처럼 무엇인가 그럴듯해 보인다.

 

나는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5월의 아침인데도 햇살이 강렬하다. 등이 아니리 해를 이고 걸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언젠가 우리가 세상을 하직할 때도 아침이었으면 좋겠다. 극락이 서방에 있다니 사후의 길이 편안할 것이다. 이틀간 많은 비가 내린 후라 대기는 쾌청하고 강물은 제법 불어났다. 노란 금계국이 온통 강둑을 덮고 있다. 세종의 보행 다리인 이응교를 지났다. 우리 한글 이응(o)’의 모양이어서 이응 다리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보행 전용 다리 건립을 비판할 때, 나는 스위스 루체른의 카펠교를 생각하며, 얼마나 멋진 발상이냐며 적극 찬동했다. 로이스강 위에 건조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지붕이 있는 목조 다리를 건널 때는 감탄과 흥분 그 자체였다. 그러나 세종보가 해체되어 강물이 확보되지 않은 빈약한 환경에서의 보행 다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현대식으로 고안된 세종의 다리는 그런대로 분위기가 멋지다.

 

다리를 지나 뚝방으로 들어서니 한적하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여럿 지나는데 힘들게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초등학교 시절의 등굣길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에는 쾌 먼 길이었다. 양쪽으로 키 높은 가로수도 우거지고 우리를 유혹하는 문방구도 많았다. 나는 그 길을 걷는 것도, 학교에 가는 것도 싫지 않았다. 멀리서 내가 좋아하는 여학생을 보는 날에는 왜 그렇게 가슴이 떨리고 기분이 좋았던지, 그녀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가는 모습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혹시 오늘 이 길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밝은 파라솔을 쓰고 강둑에 서 있는 모네의 그림 속 여인처럼 품위 있게 홀로 걷고 있는 여인은, 이 시대에는 정녕 없단 말인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정말 없었다. 까치 한 마리가 전봇줄에 앉아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멀리 강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실망할 것은 없다. 내일도 있지 않은가.

 

연구실까지 1시간 15분이 걸렸다. 중간에 사진 몇 장을 찍은 것 이외에는 쉬지도 않았다. 빠른 걸음도 아니었으니 그리 먼 길도 아니다. 오는 내내 수필 쓸 생각으로 힘든지도 몰랐다. 그런 면에서 돈을 좇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걷는 일은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다. 걷는 몸의 율동 속에서 쓰레기 같은 생각들은 가라앉아 사라지고, 밝고 맑고 고운 입자들이 의식의 지평으로 떠올라 스스로 자리를 잡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그림처럼 한 편의 글로 전개된다. 저녁에 이 길로 다시 되돌아 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그 길의 끝에서 기다리는 늙은 아내도 멋진 천사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2023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