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 2023. 5. 25. 07:12

4. 늙어감에 대하여 6

 

구녕 이효범

 

카터는 백악관을 울면서 떠난 후에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사실 우리 생명의 본질은 부단한 활동이다. 활동이 멈추는 것이 죽음이다. 키케로는 기원전 150년에 이미 노년에 관한 글을 썼다. 그는 카토의 입을 빌려, 노년이 비참해 보이는 데는 4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노년은 우리를 활동할 수 없게 만들고, 우리 몸을 허약하게 하며, 우리에게서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가며, 노년은 죽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반박한다. “위대한 일은 힘이나 민첩한 육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언, 권위, 성숙한 지혜에 의해서 성취할 수 있다. 노인은 그러한 것을 잃어버리기는커녕 거꾸로 보다 풍부하게 몸에 지니고 있다.”

 

환갑이 지난 노인도 이전처럼 활동을 계속하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사회는 건강하고 강건하기 위해서 채워야 하는 비어있는 공간이 너무나 많다. 대부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들이다. 부모가 돈벌이하기 바빠 돌보지 못하는 자식들의 굶주린 사랑을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채워줄 수 있다. 또 노인은 단지 오래 삶으로 써 갈등하는 형제자매를 안정시킬 수 있다. 사회에서 원로를 필요로 하는 때와 장소는 의외로 많다. 어르신은 권위와 지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활동하는 노년을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파우스트는 끊임없이 행위함으로써 자아의 한계를 넘어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장님이 된 파우스트 박사는 죽을 때가 가까이 오자, 악취가 나는 못을 매립하여 수백만이 살 수 있는 땅을 만들려는 역사에 자신해서 참여한다. 그는 이 계획에 인생의 마지막을 바치려고 한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이렇게 말한 후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외치고 쓰러진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자기에게 팔아넘겨진 파우스트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그러나 바로 그때 천사들이 내려와서 그를 하늘로 데려간다. 파우스트는 언제나 갈망하며 단 한 번도 행동을 단념하지 않았던, 그 고귀함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다.

 

마르크스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망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인간의 소외(alienation)’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외란 자기 자신에 의해서 생산된 것이 자신에 대해 소원해지고, 대립적으로 되고, 심지어 자기를 지배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이 개념을 사용하여 자본주의하에서의 인간, 특히 노동자의 삶의 모습을 규정하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하나의 신체적 존재로서 생존을 지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노동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는 경제적이다. 즉 노동은 사용 가치나 교환 가치를 보유하며, 생산 과정에서 일어나는 생산품이나 물품을 결과로 초래하는, 목표 지향적 생산 활동의 사회적 표현이다. 생산품은 노동 활동을 하나의 물건 형태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노동을 통해서 인간은 하나의 특정인이 되고, 자신을 하나의 작업자로 정의하게 된다. 또 다른 의미에서 노동자는, 그가 수행하는 노동에 따라 정의되기 때문에, 노동자가 생산한 물품은 대상화(對象化)되고, 외표적인 형태에서 노동자 자신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이 자신을 대상의 형태로 객관화하는 것은 그의 잠재력을 실현한다. 이것은 자신을 하나의 개체적(個體的) 존재로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생산품 또는 노동자의 객관화가, 노동하는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에게 귀속된다. 왜냐하면 노동자는 자기 노동의 대가를 온전히 받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에게 착취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하에서는 자기의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노동 활동으로부터의 소외, 유적(類的) 존재로부터의 소외, 동료로부터의 소외가 피할 수 없다고 보았다.

 

마르크스가 그리는 노동은 우울하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활동의 왜곡된 형태이다. 가슴 뛰는 일은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구원한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온 시간을 바쳐 몰두할 수 있다. 인생의 전반기에 한 강제적 노동이 우리를 지겹게 했다면, 인생 후반기에 우리는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죽음을 앞두고 사람들이 하는 후회 중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가장 많은 빈도로 나타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