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5
4. 늙어감에 대하여 5
구녕 이효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 또 그것은 거창하기도 하고 사소하기도 하다. 일평생 지속되기도 하고, 수시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유가 사라지면 희망이 사라지고, 희망이 사라진 곳은 바로 지옥이기 때문이다. 60년 환갑이 지난 노인은 불타버린 재처럼 이유가 소진되기가 쉽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재 속에도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다. 이미 꺼져버렸다고 낙심했던 풋풋한 감정도 새롭게 부활하기를 바라며, 의지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다. 바람만 불면 조그만 불씨는 다시 살아나서 젊은 날보다 더 큰 산을 태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살아가는 이유는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 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과 경쟁하는, 내가 가지면 남이 가지지 못하는, 결국은 남의 기회나 재화를 빼앗는, 보이는 가치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인생 전반기의 삶의 이유였다. 이제 후반기는 얼마든지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결국은 남에게 베푸는, 보이지 않는 가치여야 한다.
남에게 베푸는 것을 불교에서는 ‘보시(布施)’라고 한다. 보시는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라는 육바라밀의 한 덕목이다. 육바라밀은 보살의 실천행이다. 보살은 소승불교가 아라한을 추구하는데 반해 대승불교에서 내세우는 이상적 인간상이다. 아라한은 자기 해탈을 주로 목표로 하는데 반해, 보살은 ‘위로는 보리(깨달음)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上求菩提下化衆生)’하려고 한다. 그런 자비심을 가진 보살은 남의 고통을 그대로 볼 수 없다. 그것이 곧 나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런 보살은 조건 없이 남에게 기꺼이 주는 생활을 수행한다. 보시는 내용에 따라, 물질적인 재보시(財布施), 교육적인 법보시(法布施), 종교적인 무외시(無畏施)로 나뉜다. 무외시는 계율을 지녀 남을 해치지 않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평안하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보시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자기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남에게 하는 봉사를 의미한다. 휴지를 줍는 것도 봉사이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어린아이를 칭찬하는 것도 봉사이다. 봉사는 돈을 받지 않고 기꺼이 자기가 가진 것을 타인과 나누는 자선 행위이다. 봉사할 때 우리는 진정한 기쁨을 느낀다. 내가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지 남에게 봉사하지 않고 받기만 하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높은 지위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지와 마찬가지이다. 거지는 진정한 의미에서 인격을 지닌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진정한 기쁨, 양질(良質)의 기쁨이 무엇인지 맛보지 못한 사람이 어찌 사람일 수 있는가. 배를 채우기 위해 구걸하는 돼지일 뿐이다.
지미 카터는 실패한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이었다. 그는 중임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퇴임 후 노벨 평화상을 받은 가장 훌륭한 전임 대통령이 되었다. 카터는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Habitat for humanity)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더 나아가 ‘지미 카터 프로젝트’를 만들어, 동남아시아의 쓰나미나 아이티의 지진 등 세계적인 인류의 참상에 자원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1994년 6월 24일에는 북한을 전격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나고,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다. 카터는 퇴임 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인 모범 사례이다. 보시 즉 봉사야말로 노인이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