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 2023. 5. 22. 05:48

4. 늙어감에 대하여 3

 

구녕 이효범

 

사람은 정신과 육체로 되어 있다. 육체의 발달은 20세 전후면 끝난다. 야생의 동물들은 대부분 신체의 발달이 끝나면 얼마 후에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인간은 3배를 더 산다. 인간만이 갖는 아주 독특한 현상이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이 계속 성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은 노년에도 성장할 수 있고, 또한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공자도 만년에 논어위정편에서,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의 성장 과정을 요약하여 말했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于學), 서른 살에 자립()하였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하지 않았고(不惑), 쉰 살에는 천명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며(知天命), 예순 살이 되어서는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었고(耳順), 일흔 살에는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從心所欲不踰矩).”

 

인간은 나이가 들면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강직되기 쉽다. 보통 노인은 자기 중심성, 내향성, 보수성, 시기, 질투, 유연성과 융통성의 결여, 고집성, 적응력의 저하, 불평, 건강 염려증, 완고함 등이 있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노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현대 사회의 편견을 반영한다. 노인의 개인차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노인 성격의 일반적인 특징이 있는지도 의심스럽고, 설령 어떤 식으로 일반화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로 무엇인지는 더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기억력의 감퇴를 피부로 느낀다. 특히 최근의 기억 상실이 과거의 기억 상실보다 더 많이 일어난다.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렸던 기억은 또렷한데 어제 한 일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친구 이름들을 잃어버려 애를 먹고,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서도 핸드폰을 찾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진다. 이런 것은 노화의 자연스런 현상으로 그리 걱정할 것이 아니라고 위안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늙어가는 것이 문제다. 청춘 시대의 왕성한 호기심, 무엇인가를 알고 이해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열정,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강철같은 의지,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성과의 만남, 목숨을 바쳐서도 하고 싶은 사랑, 세상의 진보에 대한 확신 등이 사라지고, 이제 나의 인생에는 더 이상 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어두운 절망감이 밀려온다. 세상은 온통 회색이고 무덤덤하다.

 

절망 앞에서 인간은 수치심을 잃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인격과 도덕의 세계가 사라진다. 그러면 인간의 내면은 냉냉해지고 자기중심적이 된다. 금전적으로도 남에게 베풀지 않고 수전노가 된다. 이기적(利己的)인 사람은 남에게 베풀 여유도 없고, 베풀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금고 속에 재산을 산더미같이 쌓아두고도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러면 친구와의 우정은 사라지고 사회와의 관계도 단절된 채, 오히려 라떼만 외치게 된다. 정신적인 성장을 계속하지 않으면 육체적인 죽음이 오기 전에 정신적으로 먼저 죽음을 맞는다. 죽음이 멀지 않은데, 인생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