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헨리 데이빗 소로를 찾아서2

이효범 2023. 3. 7. 07:42

(8) 헨리 데이빗 소로를 찾아서 2

 

구녕 이효범

 

소로는 젊은 날 뉴잉글랜드 지성인들의 모임인 트란센덴탈 클럽(Transcendental Club, 콩코드 그룹)’의 일원이었다. 이 모임의 중심인물은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이었다. A.B. 올컷, 존스 베리, F.헤지, 마거릿 풀러, 나다니엘 호손 등이 함께 했는데, 그들은 다이얼(Dial)’이라는 계간지를 발간하였다. 미국은 앤드루 잭슨 대통령 이후 물질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풍요로운 사회는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관을 훼손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타락한 문명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사상개혁 운동이 초월주의 운동이었다. 이들은 정신적 관조(觀照)로써 물질과 과학 위에 서고자 했다. 반물질적이고 반과학적이 아니라, 초절(超絶)한 자세로 삶을 깊이 있게 음미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칸트의 본체계처럼 감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초월 세계가 실재함을 믿음으로써, 반대로 현실 세계의 무한성을 찬미하였다. 에머슨은 미국이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면 유럽으로부터 사상적으로 독립할 것과 미국인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유럽의 우아한 사상을 경청해왔다. (---) 의존의 시대, 즉 다른 나라의 학문에 대한 오랜 도제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

 

에머슨은 수 대에 걸쳐 목사를 배출한 청교도 가문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을 거쳐, 목사가 되었으나, 3년 후, 더 이상 형식적인 성찬 예식을 집전할 수 없다는 고별 설교를 마지막으로, 목사직을 사임했다. 기독교 교리의 독선화와 신앙의 형식화에 회의를 느껴 사임했으나, 결혼 후 2년 만에 죽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도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자기신뢰(Self-reliance)에서, 내면에 신성을 가진 인간이 자기 신뢰를 기초로 행동함으로써 더 나은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어떤 것에도 복종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복종함으로써 스스로 면죄를 선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은 정부나 사회, 종교 같은 기관의 권위에 순응해서는 안 된다. “사회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인가다움을 빼앗으려 음모를 꾸민다. 사회는 일종의 주식회사이다. 그 속에서 각각의 주주들은 자신의 빵을 더 확실히 보장받는 대신, 그 대가로 자유와 교양을 넘겨주기로 합의한 셈이다. 거기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은 순응이다. 자기 신뢰는 혐오의 대상이다. 사회는 본질과 창조성이 아니라 명목과 습관을 사랑한다.” 진리는 사람 안에 존재한다. 이것이 진정한 권위이다. “사랑은 한탄하고, 이성은 성가시게 하지만, 응답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네.- ‘진리를 위해 인간이 마땅히 죽어야 할 때, 편안히 사는 것은 지옥에 있는 것과 같다.’” 에머슨은 희생(Sacrifice)’이라는 이 시에서, 진정한 사랑과 이성이 가리키는 길을 걸으며 사는 것이 진리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선함이 악함보다 미세하나마 더 많이 있기에 성경의 원죄 교리는 저항되어야 마땅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연이라는 에세이를 통해서 초월주의를 소개했다. 그는 동양 사상(힌두교)에 밝아 청교도의 기독교적 인생관을 비판하고, 편협한 종교적 독단이나 형식주의를 배척했다. 그는 영적인 자연의 실재인 절대자(Absolute), 혹은 대령(大靈, The Over-Soul)의 존재를 믿었다. 그의 초월주의에 의하면 자연은 아름다우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숲속에서 우리는 이성과 신앙으로 돌아간다. 내 인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게 불명예이든 재앙이든 자연이 고치지 못하는 것은 없다. (---) 나는 하나의 투명한 눈알이 된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그 어떤 것도 아닌 무의 존재가 된다. 우주적 존재의 흐름이 나를 관통해 순환한다. 나는 하나님의 한 부분이 된다. 나는 오염되지 않은 불멸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우리는 이런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만한 세계여 안녕히. 나 집으로 돌아가련다./ 그대는 나의 친구 아니요 나 또한 그대 친구 아니니./ 소금끼 나는 바다 물거품처럼 나는 오래 팽개쳐 있었나니./ 온종일 지친 구름들 속에 헤매이며---./ 아 나의 집, 아 거룩한 집!/ 아첨의 아양떠는 얼굴도 안녕히/ 고결의 슬기로운 그 찌푸린 얼굴도/ 벼락부자가 된 부의 외면한 눈도/ 낮거나 높은, 온순한 관리도/ 얼어붙은 가슴들 서두르는 발길들도/ 소란한 노고도 재판정도 거리도/ 가는 자들도 오는 자들도 모두 안녕히./ 오만한 세계여 안녕히. 나 집으로 돌아가련다./ 내 집 난롯가로 돌아가련다./ 저 푸른 언덕에 홀로 안겨/ 아름다운 여름새들이 목청 떨며 지저귀는 그곳으로.” 또 우리가 갖는 통찰력과 경험은 논리보다 더 중요하다. 영적인 경험은 조직화된 종교에서가 아니라 개인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다.

 

에머슨은 노예제도를 비판했다. “미국 남부는 노예제를 제도라고 부릅니다. (---) 저는 노예제를 빈곤이라고 부릅니다. 노예 해방은 문명의 요구입니다.” 그는 링컨을 지지했다. 그가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에머슨의 에세이를 읽었고 에머슨의 강연을 본 적이 있는 링컨은 그를 환영했다. 링컨이 암살로 죽자 그는 링컨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연설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