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5)

이효범 2019. 9. 3. 09:24

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5)

 

구녕, 이효범

 

아름다운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월요일이 되었는데도 갈 곳이 없습니다. 눈은 이미 4시 반이면 어김없이 떠져서, 5시에 고정시킨 알람을 끌 만반의 준비를 벌써부터 하고 있다가 쉽게 그 막중한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치솔질을 하고,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었으나 가야할 목적지가 사라졌습니다. 오래 전부터 이날을 기다려왔고 또 이날에 해야 할 새로운 일로 마음 설레기도 했는데, 막상 오늘이 오니 마음은 착잡하고 적지 않게 당황되기도 합니다. 백수 첫날에 새로 장만한 연구실로 씩씩하게 출근(?)하기도 뭐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잠을 잔 방으로 들어와 편지를 씁니다.

37년 봉직한 대학을 퇴임하고 나는 명예교수가 되었습니다. 공주대학교는 명예교수에게는 3년 동안, 한 학기 한 과목을 강의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집니다. 학과장이 다음 학기에 무슨 과목을 강의하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앞으로는 한 과목도 맡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선언하였습니다. 선배나 동료교수들은 곧 후회할 것이라고 말렸습니다. 그들도 한창 일 때는 퇴임 후 강의를 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공개적으로 밝힌 바가 있었습니다. 머리 흰 늙은 교수가 실력도 없이 강의를 고집하는 것은 후배 교수들에게 짐이 되고 또 어린 학생들에게도 민폐를 끼친다는 이유를 달았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강의하고 더 많은 강의를 요구하는 선배교수들을 입에 거품을 품고 크게 비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막상 퇴임할 때가 되니 그 강렬했던 주장들을 슬그머니 철회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건강 상태가 좋아 선배들보다 10년은 더 젊게 살고 있고, 또 우리들은 본격적으로 공부한 세대로,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체계적으로 학문도 접하지 못하고 운이 좋아 교수가 된 이전의 세대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항변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지금 퇴직하거나 퇴직한 대부분의 교수들도 선배들처럼 연구와 강의에 그리 치열했던 것 같지 않습니다. 아니 그들이야 어떻든 나 자신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미련 없이 교직을 떠나는 것이 도리라고 봅니다.

아내에게 먼저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아내는 펄쩍펄쩍 뛰면서 반대입니다. 경제가 문제가 아니라 당신 건강이 정말 걱정이 된다는 겁니다. 물론 강의를 단번에 끊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건강도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분명이 아내에게는 강사료도 그에 못지않은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나는 지금 외국에서 학위 받고도 전임이 못되어 고생하는 젊은 시간강사가 얼마나 많은데 그들을 위해서도 나이든 사람들이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고 설득했습니다. 아내는 언제부터 당신이 그런 성자였느냐고 따집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나는 평생 倫理科에 몸담고 근무했지만 동료교수들은 놀기 좋아하는 나를 이 교수는 윤리과가 아니라 倫樂科에 근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놀렸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나는 아내의 말을 들을 나이는 지났습니다. 아내가 비웃을 것 같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지만 나는 진작부터 교수 생활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은 인격적으로 만났던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사라지고 온통 시장의 논리가 판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시절에 새해가 되면 교수님께 세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책이 부족했던 시절에 교수님의 강의는 권위가 있었고 우리는 그 강의에서 지적 기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지식은 홍수처럼 넘쳐나고 대학은 그야말로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한 학원으로 전락하였습니다. 특히 목적대학인 사범대학은 임용고사라는 절대 절명의 목표 때문에 시험에 관련이 없는 과목이나 교육을 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내가 전공한 철학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우리 철학계는 事大主義的 성격이 짙었습니다. 공자 가라사대’, 칸트 가라사대하면서 가라사대철학만 가르쳤습니다. 물론 공자의 철학과 칸트의 철학은 중요하고 그것은 공부할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내가 싸우고 있는 인생의 절절한 문제는 그들이 다룬 문제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철학은 자기 시대의 자기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스피노자가 그랬고, 니체가 그랬고, 원효가 그랬고, 함석헌옹이 그랬습니다. 아니 모든 유명한 철학자들은 평생 동안 자기 문제를 가지고 고군분투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절대로 아무 고민도 없이 지나간 죽은 철학 사상들만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지껄이진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공자가 말하는 耳順을 지나 從心所欲不踰矩의 나이로 접어듭니다. 이런 나에게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우리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기 생각만을 무책임하게 떠드는 것이 어디 가당한 일이 되겠으며, 또 학원처럼 남의 사상만 잘 요약해서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늦었지만 이제 정말 나에게 하고픈 일이 생겼습니다. 중국에는 사서삼경이 있고, 인도에는 우파니샤드와 여러 기타서들이 있으며, 그리스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있습니다. 이런 보석 같은 철학적 고전들은 끝없이 반복되어 연구되고 늘 새롭게 해석되어 인류에게 빛을 던져줍니다. 그러나 철학의 위대한 고전들은 고대의 일정한 시기에만 생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각 시대마다 탁월한 철학자들은 그 시대의 사상을 집약했고 놀랄만한 새로운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그리하여 철학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습니다. 현대 유럽의 비트겐스타인이나 하이데거가 쓴 책들은 이 시대의 새로운 철학적 고전들입니다. 그 속에는 현대 문명이 부딪친 여러 문제들과 세계 지성이 오랫동안 숙고했던 철학적 과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엄청난 몸부림이 녹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철학적 고전들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철학사를 이루는 중요한 저서들을 아직 세계인들은 그렇게 주목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철학계는 아직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모든 중요한 고등종교들이 평화롭게 정착된 이런 풍부한 사상의 토양 위에서, 우리는 아직도 우리 철학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질문명은 기적을 이루어냈는데 정신문명은 멀리 지체되어 우리는 불구상태인 것입니다. 갑자기 땅 값이 올라 들어온 부를 어떻게 처리할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졸부라고 할까요. 이제 우리 철학계에도 칸트를 필요로 합니다. 그 당시 독일은 철학의 불모지였습니다. 그러나 칸트의 철학은 한 순간에 독일의 철학을 프랑스와 영국 철학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우리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우리 문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든 세계에서 제일 과학적인 위대한 언어입니다. 이런 언어를 가지고 국운이 피어나는 이때에, 우리가 철학의 새로운 고전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커다란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마지막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존경 받지도 못하는 무의미한 강의에 쏟지 않고, 개똥철학일지라도 내 문제에 천착하고 싶어졌습니다. 내 의도가 어느 정도 이루어질지 나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이것이 사실 더 이상 교단에서 강의를 하지 않겠다는 나의 眞心입니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나는 아내한테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한 행동들을 보아 아내는 나의 말을 절대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나는 촌사람이고 촌놈은 무식하지만 뚝심이 셉니다.

익크! 혼자 각오를 다지고 있는데 지금 아내가 부르고 있네요. 퇴직해서 할 일이 없으니 차를 대기하라는 군요. , 참새가 대붕의 큰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버틸 수 없고 나가봐야겠습니다. 절대로 이것은 내가 아내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평화를 위해 참아주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편지 하겠습니다.

 

201992, 이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