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롤즈를 찾아서7
(5) 존 롤즈를 찾아서7
구녕 이효범
사라진 정의의 문제를 다시 크게 부각시킨 사람은 존 롤즈이다. 그는 『정의론(A Theory of Justice)』 서두에서 “사상체계의 제1덕목을 진리하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제도의 제1덕목이다. 이론이 아무리 정치하고 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배척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듯이,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혁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정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일생을 통해 정의라는 하나의 주제만 천착한 그의 단면을 잘 읽을 수 있다.
우선 그는 정의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정의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는 이 점을 밝히기 위하여 구성원 상호간에 어떤 행동규칙을 가진 협동 체제를 가정한다. 일종의 사고 실험인 셈이다. 이런 체계를 가진 사회는 상호이익이라는 특성뿐만 아니라 상충하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상호협동에 의해 획득한 이익에 대하여 그들은 무관심하지 않고, 그 이익에 대해 보다 작은 몫보다는 보다 큰 몫을 바라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익의 분배방식을 정해줄 정의의 역할이 드러나게 된다. 즉 정의의 역할은 기본적인 사회체제 내의 권리와 의무를 할당하는 방식을 제시해주고, 사회협동 체제의 이익과 부담의 적적한 분배를 결정해주는데 있다. 따라서 정의는 이런 정의의 역할을 담고 있는 사회의 기본제도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의 기본제도란 정치의 기본법이나 경제적, 사회적 체제를 지칭한다. “정의 여부를 따질 수 있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법이나 제도, 그리고 사회체제뿐만이 아니고 의사 결정, 판단, 비난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의 특정 행위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또한 우리는 사람이 갖는 태도나 성향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 그 자체에 대해서도 정의롭다 혹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논하려는 것은 사회정의인 만큼 우리에게 있어서 정의의 일차적 주제는 사회의 기본구조,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의 주요 제도가 권리와 의무를 배분하고 사회협동체로부터 생긴 이익의 분배를 정하는 방식이 된다. 여기서 주요 제도란 정치의 기본법이나 기본적인 경제적, 사회적 체제를 말한다. 그래서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경쟁적 시장, 생산수단의 사유 등에 대한 법적인 보호, 그리고 일부일처제 등은 주요한 사회제도의 예들이 된다.”
이런 주요 제도들이 정의의 일차적 주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할 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기대와 소망까지 결정하는 근원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적인 사회제도로 인하여 어떤 출발은 다른 출발점보다 유리한 조건이 부여되고 또 이로 인하여 인생최초의 기회가 좌우된다. 자본주의 하에서 재벌 회장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과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은 삶의 조건이 같을 수가 없다. 롤즈는 바로 여기에서 근원적인 불평등을 간파하고 있다. 따라서 정의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곳은 바로 이와 같은 불가피한 불평등에 있다.
롤즈는 인간이 지켜야 할 정의의 원칙이 신이 주었다거나, 자연이나 이성 속에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르트르(J.P. Sartre)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처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임으로 만들 수 있는 것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것은 평등한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에서 선택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철학적 목적을 로크, 루소, 칸트에게서 나타나는 사회계약의 이론을 고도로 추상화해서, 일반화된 정의론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초적 입장에서 구성원들이 계약하는 원초적 계약을, 어떤 특정한 사회를 선택하거나 특정한 정부를 세우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사회의 기본구조에 대한 정의의 원칙들이 원초적 합의의 대상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