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 2023. 1. 3. 08:43

(5) 존 롤즈를 찾아서6

 

구녕 이효범

 

정의가 무엇인지는 한마디로 단정하여 무엇이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그래서 켈젠은 사람은 수많은 민족, 계급, 종교, 직업 등으로 구분되어 서로 모순되어 있으므로, 각자 다른 정의의 이념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에 대하여 단순히 이것이 정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정의는 배분적 정의와 관련하여 논해졌다. 배분적 정의와 관련해서 에른스트 투겐트하트는 거짓말을 하면 얼굴이 빨개진다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케이크 하나를 여러 명의 아이들에게 나눠줄 때는 다양한 이유에서 불평등한 분배라는 불만이 생길 수 있다. 한 아이는 자신이 남보다 더 배가 고프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이른바 필요의 논증이다. 다른 아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케이크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했노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기득권의 논증이다. 세 번째 아이는 자신이 엄마를 도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공로(즉 업적)의 논증이다. 네 번째 아이는 자신이 가장 나이 많은 자식이기 때문에 더 큰 조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주장은 가장 나이 많다는 것에 이미 더 큰 가치가 주어진다는 논증에 근거한다. 모든 이유들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중요한 이유들이 될 수 있다.” 과연 어떻게 배분하는 것이 공정한 배분인가?

 

배분적 정의의 형식적 원리는 각자에게 그에게 속한 것을(Suum cuique)’ 주라는 것이다. 이런 정의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집대성한 로마법 대전(Corpus luris Civilis)에 들어있다. 이것은 우르피아누스(Ulpianus)의 이론이다. 그는 정의란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고자 하는 항상적이고 영속적인 의지이다.”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각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응분의 몫을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월터 카우프만(Walter Kaufman)은 응분의 몫을 결정하는데 고려되어야 할 사항을 8개의 범주로 나누었다. (a) 그는 누구인가, (b) 그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 (c) 그가 무엇을 하였는가, (d)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e) 그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f) 그는 자신의 피부양자를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g) 그가 무엇을 요구하는가, (h) 그가 무엇을 계약했는가.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런 8가지 사항을 모두 고려하여 배분할 수 있을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정의(正義)는 정의(定義, definition)할 수 없다는 정의에 대한 회의론이 성립된다.

 

정의는 더 이상 정의될 수 없다. 이런 회의론적 상황에서는 정의가 더 이상 진지하게 논의되기가 어려워진다. 더 나아가 근대 윤리학에서는 정의에 대한 논쟁이 아예 실종되었다. 정의뿐만 아니라 모든 덕들이 사라졌다. 근대의 윤리는 도덕적 행동을 하는 사람의 인격이나 도덕성을 중요시한 것이 아니고, 도덕적 행동의 시시비비를 문제 삼았다. 그래서 도덕적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이나, 사람이 따라야 할 도덕 법칙이 무엇인지를 문제 삼았다. 우리가 잘 아는 영국의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이 도덕적 옳고 그름의 기준이었다. 칸트는 너 자신의 인격에 있어서나 모든 타인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단순히 수단으로서만 사용하지 말고 동시에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행위하라.”라는 정언적 무상명령을 도덕법칙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