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롤즈를 찾아서4
(5) 존 롤즈를 찾아서4
구녕 이효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은 정의론의 역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의미를 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그의 스승 플라톤과는 달리 이성에 바탕을 둔 과학적 방법으로 정의론을 전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덕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완전한 덕이고 최고의 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정의의 개념을 보다 확실히 언급하기 위하여 그것과 반대 개념인 不正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에 의하면 부정의는 한편으로는 위법적인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과다를 탐한 불균등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꾸로 정당하다는 것은 준법적인 것과 균등(평등)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정의에는 적법성의 원리와 이익(명예나 정치적 직책이나 금정 등)의 배분에 관하여 과다 또는 과소에 이르지 않는다는 의미로서의 균등성의 원리가 내포되어 있다. 전자는 보편적인 성격으로서의 광의의 정의이며, 후자는 특수한 성격으로서의 협의의 정의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는 적법성이 균등성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이해된다. 모든 불균등이 불법적이지만, 모든 불법적인 것이 불균등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법성에 의해 그는 정의를 법과의 일치로 이해했다. 즉 법에 의해 행위하는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적법적의 의미에서의 정의는 사실 덕의 일부가 아니라, 덕의 전반을 의미한다. 모든 적법적인 행위가 정의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의의 이념의 역사에서 적법성과 균등성 중에서 어느 것이 정의의 기초를 이루는데 더 근본적인가 하는 것은 논쟁되어 왔다. 이들 중에 더 근본적인 것은 적법성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각자가 적당하게 차지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기 전에, 그것이 적당하게 차지되었는지 여부를 먼저 물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에 대한 중심 문제는 적법성보다는 균등성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일반적인 정의 이외에 특수한 정의를 생각했고 이 둘을 명확히 구분했다.
특수한 정의 즉 협의의 정의는 과다를 탐하지 않는 것 혹은 이해득실에 있어서 과다와 과소의 중간 혹은 균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정의는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분배적(distributive) 정의이고 다른 하나는 시정적(corrective) 정의이다. 분배적 정의는 비례적 균등을 의미한다. 이것을 그리스 수학에서는 A:B = C:D라는 식의 기하학적 균등으로 표시할 수 있다. 이것은 공공생활에 있어서 정치권력이나 명예나 재화 등을 국가가 배분할 때, 개인의 능력이나 공적 등의 가치에 따라서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을 말한다. 즉 가치가 같으면 같은 것을, 가치가 다르면 다른 것을 배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조가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반정을 성공했을 때, 반정의 공신들은 그 공과에 따라 균등하게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괄은 한 일도 없는 김류가 1등 공신이 되고 자신은 2등 공신이 된 것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래서 결국 반란을 일으켰다.
시정적 정의는 조정적, 평균적, 교정적, 교환적 정의라고 불린다. 이것을 그리스 수학에서는 C = D라는 산술적 균등으로 표시할 수 있다. 이것은 개인 간의 상호교섭에 있어서 당사자의 가치나 인품 등의 인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모두 평등한 것으로 보고, 오로지 이해득실 자체에 있어서 역부족이 없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에게 사기를 쳤든,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에게 사기를 쳤든 아무 차이가 없다. (---) 법은 다만 상해의 독특한 성격만을 주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시정적 정의도 엄밀한 의미에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매매나 임대 혹은 고용 등의 자발적 교섭에 있어서 이득과 손실이 과부족이 없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불법행위나 범죄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처럼 비자발적 교섭에 있어서 피해보상 또는 형벌 집행 등의 규정을 꾀하는 것이다. 범죄라 하더라도 자신이 받는 형벌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보다 커도 안 되고 작아도 안 된다. 그래서 함무라비 법전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되어 있고, 고조선 8조법에도 ‘살인을 저지른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원칙이 있다.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은 그리스 정의론의 집대성으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기하학적 방법에 의한 정의 개념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고 켈젠은 비판한다. 즉 ‘만일 두 개의 점이 주어지면 그것을 연결한 선의 중간점은, 두 개의 점에 의해 결정된다는 기하학적 방법에 의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일 두 개의 악(惡)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우리가 구하려는 덕을 발견할 수 있다. 덕은 악덕의 반대이다. 만일 기만이 악덕이라면 정직은 덕이다.’라고 말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윤리학은 실정적 도덕과 실정법을 정당화하고, 사실상의 문제로서 무엇이 과다이며 무엇인 과소인가, 또는 무엇이 극단이며 무엇이 선과 정의의 중간점을 결정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라’라든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배분적 공식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며, 정의에 관하여 실질적인 것을 만족시켜 주시 못한다고 비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