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능을 찾아서4
(4) 혜능을 찾아서4
구녕 이효범
5조 홍인 밑에서 같이 공부한 혜능이 남쪽 조계의 보림사에 있을 때, 신수는 형남 옥천사에 거주하고 있었다. 두 종파가 쌍벽을 이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남쪽의 혜능과 북쪽의 신수라고 하였다. 그래서 혜능의 문하는 남종(南宗), 신수의 문하는 북종(北宗)이라 불렸으며, 남종의 선을 돈교(頓敎), 북종의 선을 점교(漸敎)로 구분하었다.
신수는 5조 밑에 있을 때 다른 스님들을 가르쳤던 최고의 상좌 스님이었다. 그는 학식이 깊고 달마로부터 내려오는 선의 전통에 충실했다. 그래서 그는 5조가 자신의 공부를 내보이라고 요구했을 때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다. 늘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가 붙지 않도록 하라.”는 게송을 썼다. 마음을 닦기 위해서 그는 제자들에게 “마음을 머물러 고요함을 살피어보고, 오래 앉아서 눕지 말라(住心觀靜 長坐不臥)”고 가르쳤다. 이것은 불교의 오래된 수행방법인 좌선이나 관법(觀法)을 의미한다. 이렇게 수행하다 보면 결국 언젠가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은 부처가 되는 점차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그는 계정혜(戒定慧)를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계는 모든 악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고, 혜는 모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이고, 정은 스스로 그 뜻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혜능은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불교 경전을 필요 없다고 무시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진득이 앉아서 불경을 공부했다는 내용도 없다. 그는 나무꾼이었을 때 누군가가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그리고 홍인 밑으로 들어간 8개월 동안 스님의 설법을 들으며 공부한 것이 아니었다. 방아를 찧으며 몸으로 막노동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게송을 써 붙인 후에, 한밤에 딱 한번, 홀로, 홍인으로부터 금강경 강의를 듣고 더 크게 깨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숨어 지내는 동안에도 사냥하는 무리들과 함께 생활했다. 말하자면 혜능은 활력이 넘치는 거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기의 경험을 기초로 하여, 돈오를 말한다. 오랜 수행 없이 문득 단박에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으면 영원히 중생이나 범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깨닫는 것이 견성(見性)하는 것이고, 자기 성품(自性)을 보는 것이며, 마음의 본성인 불이중도(不二中道)에 들어가는 것이며, 반야의 지혜를 얻는 것이다. 다 같은 말이다. “반야의 지혜 역시 크고 작음이 없지만, 모든 중생 스스로의 마음이 어리석음과 깨달음으로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어리석은 마음은 밖을 보고 수행하여 깨달음을 찾으나, 자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근기가 작은 것이다. 만약 돈교를 깨닫고, 바깥으로 수행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다만 자기 마음에서 늘 바른 견해를 일으키고, 피곤한 번뇌에 늘 물들지 않을 수 있다면, 곧 견성이다.” 이렇게 견성한 사람은 “우뚝하여 선을 닦지 않고, 느긋하여 악을 짓지 않는다. 고요하여 보고 듣는 것을 끊어버리고, 거침없이 마음에 집착이 없다.” 또 그는 “법을 세워도 좋고 세우지 않아도 좋으며, 가고 옴에 자유로워 머묾이 없고, 장애기 없으며, 행동에 따라 반응하고, 말에 따라 답변한다. 화신(化身)을 두루 보아 자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자재신통유희삼매(自在神通遊戲三昧, 자유롭게 걸림 없이 통하여 노니는 삼매)를 얻는다는 것이다.”
혜능은 달을 가리키는 손끝을 보자마자, 거기에 빠지지 않고 초월하여 달을 보았다. 직접 달을 보았으니 누구보다 자신 있게 달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렇듯이 자기 성품을 한 순간에 본 것이다. 우리가 노란 색깔을 어떻게 아는가? 노란 꽃을 가리키며 이것의 색깔이 ‘노랑’이라고 해야 한다. 그렇게 견성도 직지인심(直指人心)해야 한다. 그런데 자성은 깨끗하고, 생멸하지 않으며, 완전하며, 흔들리지 않는다. 자성은 나와 모든 것을 만든다. 일체가 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그리고 그런 자성에는 본디부터 반야의 지혜가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혜능은 문자를 몰랐지만 자성의 지혜로 폭포수 같은 법문을 쏟아낼 수 있었다. 그것이 기존의 불경들의 내용과 꼭 일치하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불교는 대승불교의 정신과 연결되었고, 그의 독창성은 불교의 지평을 더욱 확장시켰다. 그의 문하에서 기라성 같은 많은 선사들이 배출되었다. 그래서 그의 불교는 ‘선종’이라는 이름으로 불교의 한 종파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706년 당나라 고종의 황후인 측천무후가 혜능을 궁중에 초청했다. 혜능은 표를 올려 병을 핑계로 초정을 사양하고, 산골에서 죽을 때까지 지내기를 원했다. 사신으로 온 설간이 혜능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대승의 견해입니까?” 혜능이 대답했다. “밝음과 밝지 않음을 범부는 둘로 보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자성에 둘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둘 없는 자성이 바로 진실한 자성입니다. 진실한 자성은 어리석은 범부라고 줄어들지도 않고, 현명한 성인이라고 불어나지도 않으며, 번뇌 속에서도 어지럽지 않고, 선정 속에서도 고요하지 않습니다. 끊어지지도 않고, 이어지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중간에 있지도 않고, 안이나 바깥에 있지도 않으며,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자성과 모습(性相)이 한결같아 늘 머물러 변하지 않음을 일러, 도(道)라고 합니다.” 불법은 언제나 불이중도(不二中道)이다. 절대적인 참된 자성에서는 번뇌와 해탈이 다르지 않고, 범부와 부처가 다르지 않고, 선과 악이 다르지 않고,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 사량분별(思量分別)하고 무명(無明)으로 가려진 범부의 눈으로 볼 때 현상들은 모든 다른 모습(相)들로 보인다. 그러나 그 모습들을 진정한 상이 아닌 허망(虛妄)한 것으로 보아야 우리는 진실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본래면목을 보면 더 이상 닦을 것도 없다. 그래서 혜능의 돈교은 돈오돈수(頓悟頓修)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