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찾아서2

이효범 2022. 12. 12. 06:59

(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찾아서 2

 

구녕 이효범

 

명상록1권은 긴 감사의 글로 시작한다. 여기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이 얼마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빚지고 있는 지를 조목조목 기술하고 있다. 할아버지 덕분에 순하고 착한 마음씨를 갖게 되었고, 아버지 때문에 겸손과 남자다운 기백을 가지게 되었고, 어머니 덕택에 경건한 마음과 베푸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 이런 식이다. 이것이 마지막 17, ()들 덕분으로까지 이어진다. 참으로 대단한 글이다. 글은 감사의 핵심을 요약하고 칭송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런 태도는 명상록전체에 이어진다. 그는 좀처럼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함께 입양된 아우 루키우스와 아우렐리우스가 황제였을 때 반란을 일으킨 이집트의 총독 아비디우스 캇시우스와 놀아났다고 소문난 아내 파우스티나에 대해서는 비난을 할만도 한데 좋은 면만 쓰고 있다. 나도 젊은 날 평생을 남 욕하지 않으면서 살기로 결심한 적이 있다. 그것은 우선 내가 남을 탓하기에는 턱없이 수양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고, 그리고 남을 욕하면 반드시 그 보복이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70살이 넘은 나는 아직도 가끔 흥분한 감정에 휩싸여 자제심을 상실하곤 한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리고 지금 미국의 대통령처럼 세계 권력의 정점에 있는 황제의 신분이고, 또한 평생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누빈 사람인데, 그런 지위와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이런 내면을 가졌을까? 이것은 그가 평생을 헌신한 그의 철학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인간이 사는 시간은 한 순간이며, 그의 실체는 유동적이고 그의 지각은 불분명하다. 인간의 육신의 요소는 모두 썩게 되어 있고, 그의 혼은 하나의 소용돌이이다. 인간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고, 그에 대한 세간의 평은 불확실하다. 즉 육신의 모든 것은 강처럼 흘러가고, 혼의 모든 것은 꿈이요 연기이다. 삶은 전쟁이자 나그네의 체류이며, 사후의 명성은 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한 가지, 철학뿐이다.”(천병희역, 명상록, 도서풀판 숲, 217, 앞으로 이 책으로 인용함)

 

아우렐리우스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만물은 불이라고 말한 헬라클레이토스를 계승하여, 이성(logos)을 지닌 전체로 보았다. 헬라클레이토스는, 존재의 철학을 말한 파르메니데스와는 달리 만물은 흐른다(panta rhei)’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 만물은 이루어진 것이며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불이 궁극적인 요소이며 생기를 주는 힘이다. 우주는 기식(氣息, pneuma)이라는 일종의 로고스적인 화기(火氣)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만물은 투쟁의 결과이다. 만물은 대립을 통해 발생한다. 대립하는 힘의 균형된 잠정적인 상태가 사물의 존재이다.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이고 만물의 왕이다. 그러나 변화는 우주의 불변적인 격식에 따라 일어난다. 변화란 곧 법도에 따르는 정연(整然)한 변화이고, 변화의 구조는 그 자체를 이성의 구현이게끔 하는 하나의 법칙성을 지닌다.

 

이런 헬라클레이토스의 자연관에 따라 아우렐리우스도 언제나 우주를 하나의 실체와 하나의 혼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하라.”(440)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의 실체, 하나의 영혼은 스토아철학의 영향을 받는 서양 근대의 스피노자의 범신론(汎神論)처럼, ()이며 곧 자연(自然)이다. 그래서 아우렐리우스가 보는 자연은 죽어있는 물질 덩어리가 아니다. 그것은 신적인 이성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신성한 법칙 즉 신의 의지나 목적이라는 신의 섭리에 의해서 일어난다. 그런 섭리는 또한 자연을 지배하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기도 하다. 자연의 모든 사건들은 앞선 어떤 원인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즉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마땅히 발생해야 하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무엇이 발생하여만 하는가 하는 것은, 신이 무엇을 의욕하는가 하는 것에 달려있다. “신들이 하는 일은 섭리로 가득 차 있다. 운명이 하는 일들도 자연 또는 섭리가 지배하는 복잡한 인과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만물은 섭리에서 흘러나온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