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효2
만장萬章이 물었다. “순 임금은 밭에 나가서 하늘을 부르면서 소리내어 울었다. 왜 소리내어 울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원망하고 사모하여서이다.” 만장이 말했다. “부모가 사랑하면 기뻐하면서 잊지 않고, 부모가 미워하면 두려워하면서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순 임금은 부모를 원망하였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장식長息이 공명고公明高에게 묻기를, ‘순 임금이 밭에 나가 밭갈이 한 것을 나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하늘을 부르면서 소리쳐 울고 보모를 부른데 대하여서는 나는 알 수 없습니다.’ 하니, 공명고가 말하기를 ‘이것은 네가 알 바가 아니다.’고 하였다. 이것은 공명고가 효자의 마음은 이렇게 근심이 없지 않다고 생각해서 한 것이다. ‘나는 힘껏 밭을 갈아 자식으로서의 직책을 다할 뿐이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어찌 나에게 있으리요.’ 하여서는 안 된다. 요 임금은 9남 2녀의 자식들에게 하인과 소.양. 곡물창고까지 마련하여, 순 임금의 농가에서 섬기게 하니, 천하의 선비가 그에게 많이 따랐다. 요 임금은 천하의 형편을 살펴서, 순 임금에게 임금 자리를 옮겨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부모에게 불순하였기 때문에 마치 몸을 의지할 곳이 없는 곤궁한 사람 같았다. 천하의 선비들이 기뻐하는 것은 사람이면 다 바라는 바이다. 이것이 그의 근심을 풀기에 부족하고, 색을 좋아하는 바를 사람들이 다 원하는 바이나, 요 임금의 두 딸을 아내로 삼았으나, 그것이 순 임금의 근심을 풀기에 부족하였다. 부유한 것은 사람들이 다 원하는 바이나 천하의 부를 가지고서는 순 임금의 근심을 풀기에 부족하였다. 남이 기뻐해주거나 호색과 부귀도 순 임금의 근심을 풀기에 부족하고, 오직 부모가 기뻐해주는 것만이 그의 근심을 풀어줄 수 있었다. 사람은 어려서는 부모를 사모하고, 색을 좋아하게 되는 나이가 되면 예쁜 여자를 사모하고, 처자를 가지게 되면 처자를 사모하며, 벼슬을 하면 임금을 사모하고, 임금의 마음에 들지 못하면 초조해지도록 애쓴다. 종신토록 부모를 사모하는 것이 대효大孝이다. 쉰 살이 되어도 여전히 사모하는 사람을 나는 위대한 순 임금에게서 보았다.”(『맹자』에 나온 효에 관한 문장들, <만장장구상 1>)
만장이 물었다. “시경에 말하기를 ‘아내를 얻으려면 어떻게 하는가. 반드시 부모에게 알린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믿는다면 순 임금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순 임금은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아내를 얻었습니다. 이건 어찌된 일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부모에게 알리면 아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남녀가 방에서 사는 것은 사람의 대륜大倫이다. 부모에게 알리면 인간의 대륜을 폐하게 되고, 부모를 원망하게 되므로, 알리지 않은 것이다.” 만장이 말했다. “순 임금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아내를 얻은 것은 나도 듣고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딸을 보내면서 알리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요 임금도 또한 그것을 알리면 순 임금이 아내를 얻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만장이 말했다. “순 임금의 부모는 순 임금에게 곡물 창고를 수리하도록 하고, 사닥다리를 치우고, 아버지인 고수가 창고에 불을 질렀습니다. 우물을 파게하고는 순 임금이 나오는데 흙으로 묻어버렸다고 합니다. 상象은 ‘순 임금을 모략을 써서 묻어버리기로 한 것은 내 공적이다. 소와 양, 곡물 창고는 부모에게 주고, 창과 방패는 내가 가지자. 거문고와 활도 내가 가지며, 두 형수는 내 잠자리를 돌보게 한다.’ 고 말하고, 순 임금의 집에 가보니 순 임금은 평상에서 거문고를 켜고 있었다. 상은 말하기를, ‘형님을 추모하는 생각이 간절하여 왔나이다.’하며 부끄러워 하자, 순 임금이 말하기를, ‘이 하인들을 나 대신 부려라.’하였다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순 임금은 상이 자기를 죽이려 한 것을 몰랏다는 것입니까?” “왜 몰랐겠나. 상이 근심하면 그도 또한 근심하고, 상이 기뻐하면 그도 역시 기뻐한 것이다.” “그렇다면 순 임금은 거짓으로 기뻐한 것입니까?” “아니다. 옛날에 정자산鄭子産에게 산 물고기를 보낸 사람이 있었다. 자산은 교인校人을 시켜, 연못에 넣어 기르라고 하였는데, 교인은 이것을 삶아먹고 돌아와 이렇게 복명하였다. ‘처음에는 잘 움직이지 못하더니, 조금 있다가는 힘을 차려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자산이 말하기를 ‘제 곳으로 갔구나.’ 하였다. 교인이 나와서 말하기를 ‘누가 자산을 지혜롭다고 말하는가. 내가 물고기를 삶아 먹었는데도 말하기를 제 곳으로 갔구나, 제 곳으로 갔어 하니 말이야.’ 하였다 한다. 그런 까닭에 군자를 속이는 데는 이런 방법으로는 가능하겠지 만은,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가지고 속일 수는 없다. 상은 형을 사랑한다는 도리로써 찾아온 까닭에 순 임금도 진심으로 기뻐한 것이지 어찌 거짓으로 기뻐헸겠느냐.” (『맹자』에 나온 효에 관한 문장들, <만장장구상상 2>)
맹자가 말했다. “백이伯夷는 주紂를 피해 북해 근처에 잇었으나, 주나라의 문왕이 일어섰다는 말을 듣고, ‘어찌 그에게 돌아가지 않으리오. 내가 듣건대 문왕은 노인을 잘 돌봐준다니.’ 하고 말했다. 천하에 노인을 잘 모시는 자가 나타나니, 仁인인人돌도 이곳이야말로 자기들이 몸을 의지할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5묘畝 넓이의 택지라면 그 담 밑에 뽕나무를 심고, 필부가 누에실을 자아 만든다면, 노인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다섯 마리의 암탉과 두 마리의 암퇘지를 키워 번식기를 놓치지 말고 새끼를 낳게 하면, 노인은 고기를 주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 것이다. 1백 묘의 논밭을 남편이 일구면 여덟 식구쯤이야, 그럭저럭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서방西方의 주인, 문왕이 노인을 잘 모셨다’라는 것은 그가 백성들의 논밭이나 마을에 구칙을 세워, 사람들에게 뽕나무를 기르게 하고, 가축 기르는 것을 가르쳐 그의 처자를 인도하여, 집안에 있는 노인을 잘 돌봤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쉰이 되면 비단 옷을 입어야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일흔이 되면 고기를 먹어야 배가 찬다. 따뜻하지 않고 배가 차지 못한 것을 굶주림에 떤다고 형용한다. 문왕이 다스리는 백성 중에는 굶주림에 떤 노인이 없었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맹자』에 나온 효에 관한 문장들, <진심장구상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