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11, 나무와 매미)
이효범
2022. 8. 20. 08:31
o 나무와 매미
구녕 이효범
나무도 가끔은 울고 싶었을 것이다.
천둥번개에 놀랐을 것이다.
흠뻑 젖은 몸을 닦고 싶었을 것이다.
징그러운 벌레가 기어와 무서웠을 것이다.
낙엽 지는 뒤태를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눈 내리는 배경으로 사진도 원했을 것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새 잎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별빛 아래에서 누군가와 밀어를 나누고
사계절 내내 푸르게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나무가 매미를 불러들인 이유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매미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바람 부는 들판을 꼿꼿하게 지키는
말 없는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다.
후기:
사라지는 것은 비명을 지르고 남아있는 것은 침묵한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몇 권의 책으로도 다하지 못할 사연들이 쌓여 있다.
강물도 굽이 칠 때는 소리를 내지만 깊이 흐를 때는 조용하다. 그러나 깊은 강물 그 시퍼런 모습을 보면, 지금 평온하게 흐르는 저 강물도 온 지류를 타고 내려오면서 얼마나 힘든 역경을 겪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소리 넘어 침묵의 소리를 들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