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3)
o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3)
구녕 이효범
오늘은 15km의 정통 알프스 트레킹을 걷는 날이다. 5시 반에 일어나, 6시 반에 아침을 먹고, 7시에 호텔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 점심으로 간단한 샌드위치 하나, 조그만 사과 하나, 물 한 병을 배급받았다. 트레킹 도중 산에서 먹을 점심이다.
피르스트 곤돌라 탑승장에서 곤돌라를 탔다. 2168m의 그린델발트 피르스트(Grindelwald-First)역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는 산 중간에 있는 2개의 역을 지났다. 산 정상인 하늘로 올라가는 길에 2개의 역이라니 색다른 경험이었다. 트레킹은 오르막으로 시작되었다.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계속 오르막이라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긴 오르막이 끝나고 상대적으로 경사가 조금 낮은 지점에 나무로 만든 조그만 쉼터가 있었다. 조금 늦게 오른 2진이 도착하자 1진은 자리를 양보하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산행에서 늦는 것은 절대 자기 잘못이 아니다. 우리 6명은 서운했다. 우리만의 보상을 찾아야했다. 우리는 제비새끼처럼 낮은 지붕 아래 앉아 ‘섬 집 아이’라는 동요를 불렀다. 조그만 공간에 공명되는 노래는 너무나 감미로웠다.
이런 움막은 지금은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휴게 시설이지만 아마 예전에는 목동들을 위한 시설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갑자기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별>이 생각났다.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온 단편소설이다.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참으로 아름다운 소설이다.
<프랑스 프로방스의 뤼브롱 산속 목장에서 외롭게 혼자 양을 치는 스무 살 젊은 목동은 주인집에서 보내주는 식량을 받아서 생활을 한다. 두 주일마다 한 번씩 마차가 오는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인근 50킬로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인집 따님 스테파네트가 식량을 가져 온다. 멀리서 스테파네트를 흠모하던 목동은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데 돌아가던 아가씨가 흠뻑 젖은 채 해가 질 무렵 다시 목동에게 돌아온다. 돌아가는 길에 있는 소르고강이 빗물로 불어서 넘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아가씨는 난생 처음 낯선 곳에서 목동과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어떻게 보냈을까? 도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체로 사랑을 그려낸다. “그렇게 나는 별들로 가득한 마술 세계의 일부를 상세하게 그녀에게 묘사해나갔다. ‘저 별들 중 하나는 목동들이 ’마글론‘이라고 부르는데, 토성을 따라 다니다가 7년마다 한 번씩 토성과 결혼을 한답니다.’ 라고 말하자, ‘뭐? 저별이 결혼을 한다고?’라고 하길래, 나는 ‘예, 아가씨’라고 대답했다. 이들의 결혼이 어떤 것인지 그녀에게 설명하려 하는 그때, 내 어깨 위에 상큼하면서도 부드러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리본과 레이서와 검은 머릿단이 기분 좋게 내려앉은 잠에 취한 그녀의 머리였다. 별이 사라지고 날이 밝아올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녀는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아, 이런 순간 외롭고 가난한 젊은 목동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안타깝게도 목동은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간다. “그녀의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 영혼에 약간의 혼란은 있었지만, 아름다운 생각만 준 그 맑은 밤이 나를 순수하게 지켜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마치는 문장은 정말로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하늘에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별들이 잘 길들여진 한 무리 양떼처럼 우아한 걸음으로 가만히 지나가고 있었다. 언뜻 나는 상상했다. 저 수많은 별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 하나가, 길을 잃고 찾아와서, 내 어깨 위에 가만히 잠든 것이라고.” 내가 목동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모닥불을 피었을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면 노래를 함께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게 떨어진 가장 아름다운 별을 넓은 가슴으로 포근하게 안아주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평평한 길에 앉아있는 우리 대원에게 꼴찌로 합류했다. 우리 친구들은 막 점심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정지’하고 소리쳤다. 이런 명산에 와서는 아무런 의식(儀式) 없이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산을 지키는 정령들에게 우리 식으로 ‘고시래’를 하는 것은 자연보호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알프스에서는 ‘야후’라고 소리치는 것은 눈사태를 불러올 수 있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지금은 그런 시즌이 아니었다. 우리는 ‘에델바이스’라는 노래로 우리를 허락한 산들에게 찬양을 드렸다. 심심했던 알프스의 정령들은 무척 즐거웠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왼쪽으로 융프라우를 중심으로 하는 알프스 영봉들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큰 산의 전체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나는 마치 꽃으로 장식한 매력적인 여인의 몸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어디 한 군데 버릴 수 없는 놀람 그 자체였다. 처음 코를 오를 때는 매우 어려웠지만 점심 후의 걸음은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배를 지나 안쪽 허벅지로 미끄러질 때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날씨가 청명한 한낮인데도 알프스는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하얀 속살을 그대도 우리에게 허락했다. 나는 일생에 한 번 쯤은 이 길을 걸어보라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내가 대학에 있을 때 우리 여학생들이 어떤 남자가 이상적인 배우감인지를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연인과 길고 힘든 산을 같이 등산해보라고 권했다.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 때 그 연인이 하는 행동이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니, 그것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모습을 봉현 친구가 보여 주었다. 친구는 고등학교 때도 장애 친구의 가방을 들어주곤 했는데, 이번에도 등산에 힘든 보습을 보이는 친구들의 사기를 올려주곤 했다. 내가 맨 뒤에서 멍 때리며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가는데, 깊은 사색을 하며 걷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격려했다. 또 윤성 친구는 맨 앞줄 1군에서 스스로 2군으로 내려와, 어렵게 올라가는 친구의 등을 밀어주었다. 이제 친구는 환자의 고통을 마음으로 느끼는 진정한 의사가 되어 있음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오늘 등반에 나 이외에 가장 어려워했던 친구는 광선 친구이다. 친구는 평지나 내려갈 때는 날렵했지만 오르막에서 특히 약했다. 초기 오르막에서는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카톡으로 도움을 청했다. 친구가 즐겁게 트레킹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내의 헌신적인 기도 때문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사실 내가 트레킹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을 공개하는 것은 한밤에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와의 가장 은밀한 일이라 말하기가 조금은 망설여지지만, 종규 덕택이다. 어제 밤 친구는 내 두 발바닥에 피로를 감소시키는 파스를 직접 붙여주었다. 70 평생 누구로부터도 받아본 적이 없는 최상의 대접이었다. 나는 부끄러워 차마 감사하다는 말을 못했지만, 다음 번 골프 칠 때는 멀리건 2개를 주려고 마음먹었다.
우리는 정말로 한 사람의 낙오도 없이 즐겁고 의미있게 트레킹을 마칠 수 있었다. 저녁에 나눈 고급 와인과 러시아식 스피치와 건배 제의는 여기 알프스의 중심인 인터라켄에 가장 어울리는 축제였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남은 일정도 잘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