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원효의 인간론
제8장 한국철학의 인간론
19. 원효의 인간론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나리.( 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19-1. 종파를 초월한 통불교
원효元曉는 신라의 대승 불교 사상가이다.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대승 불교가 하나의 종합적 체계로서 종파적 주관 없이 공정하게, 포괄적으로 이해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원효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이해를 독창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원효의 불교를 ‘통불교通佛敎’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의 불교가 종파를 탈피하고 초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불교 공부를 시작할 무렵부터 어떤 특정한 종파에 연루됨이 없이 스스로 모든 경론의 사상을 비교, 검토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화엄경華嚴經의 우주관, 세계관에 입각하여 우주와 세계를 일심一心이 만든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일심이 만든 세계의 본래적인 유기적 조화의 정체를 인정하면서, 인간들 스스로가 빚는 오염된 정신적 습성이 가지가지의 허망한 현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그리하여 인간 정신의 정화를 강조하며, 우주와 세계의 본래적 실상을 회복할 것을 불교에서 배워야 한다고 결론하였다.
그는 불교 각각의 종파가 편견을 가지고 자기들이 신봉하는 사상만이 옳고 다른 종파의 입장은 그르다고 하는 잘못된 논쟁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했다. 원효가 살던 시대는 중국으로부터 다양한 종파의 사상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와, 대승과 소승, 중관과 유식, 불성의 유무有無 등 서로 다른 이설들이 똑같은 부처님의 교설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었다.
여래가 세상에 있었을 때에는 이미 원음圓音에 힘입어 중생들이 (한결같이 이해하였으나) --- 공공空空의 이론들이 구름같이 일어나 혹은 자기들의 종파는 옳고 다른 이의 종파는 틀리다고 말하며, 혹은 자기들의 언설은 그러하고 다른 이들의 언설은 그러하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편견으로) 결국에는 황하와 한강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는 화쟁和諍의 입장에서 모든 상이한 교설들의 상대적 가치들을 단계적인 것,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불교에서는 경전이나 논서의 내용을 분류하는 것을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고 한다. 원효는 사람들이 일승의 길로 가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교상을 판석하였다. 그는 불교 전체를 삼승三乘과 일승一乘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삼승을 삼승별교三乘別敎와 삼승통교三乘通敎로, 일승을 일승분교一乘分敎와 일승만교一乘滿敎로 나누었다. 그는 불교의 교설로서 최고의 경지를 나타내는 것을 화엄 사상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화엄의 철학에 입각하여 보살로서의 인간의 참다운 수행의 길을 밝힌 것을 여래장 사상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다 일승一乘이라고 평가하였다. 왜냐하면 편견과 대립이 없는 원융회통圓融回通의 주체요, 화쟁和諍의 주체가, 우리의 진여眞如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승의 분교에는 보살영락본업경과 범망경 등을 귀속시켰고, 일승만교에는 화엄경과 보현교를 귀속시켰다. 일승분교는 아직 보법普法을 나타내지 못했고, 일승만교는 보법을 충분히 밝힌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또한 삼승별교에는 원시 불교 사상의 핵심 사상인 사성제나 연기 등의 인과설을 포함시켰다. 그는 사성제․연기의 교훈을 도그마적으로 신봉하는 이승범부二乘凡夫의 교리를, 소승小乘으로 몰아치지 않고, 삼승별교三乘別敎라고 특징지었다. 삼승별교는 아직 법공法空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삼승통교는 법이 공한 것을 두루 밝힌 것을 가리킨다. 그는 반야와 유식을 같은 카테고리에 넣어 삼승통교로 보았다. 이 사상들은 아직 일승의 원융한 도리를 남김없이 천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삼승이며, 삼승에 있어서는 두루 공통의 사상적 기반이 되기 때문에 통교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원효는 말하자면 대승 불교의 모든 사상들을 마치 백화점의 각 진열대에 동등하게 병렬된 상품들처럼, 무기적無機的 혼재의 모습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그는 여러 가지 대승 불교 사상들의 존재, 존립의 가치를, 하나의 불교라는 진리의 현현顯現의 역사 위에 위치시켰다. 그리고 그것들 상호간의 유기적有機的 관련성을 파악하려고 각고하였다. 그것을 그는 한 특정 종파의 폐쇄적 교리로서가 아니라, 우주 자연 속의 한 유기적 부분인 인간이 알고 따라가야 할 생활 철학으로서 완전히 소화시켰다. 그리고 그 인간 생활의 양식이 만인에게 가치 있는 것이 되도록 만인 앞에 밝혀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