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6
o 제주도 여행 6
구녕 이효범
손톱이 길어졌다. 아쉽지만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노트북을 열고 배편을 예약하려고 하는데 아내가 웃으며 다가왔다. “지금까지 제주도 여행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하루만 더 머물면 안 될까요?”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만 가는 것이 좋겠어. 제주도는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또 올 수 있잖아. 우리가 쓴 경비가 벌써 아파트 창문 하나는 팔아야 할 거야.” 아내는 계속 요구했다. “고급 호텔에 가서 여행을 럭셔리 하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그러면 정말로 힐링이 될 거에요.” 나는 아내와 40년을 살았지만 여자를 정말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힐링 그 자체이지 거기에 더해서 아파트 기둥을 뽑을 일이 또 무엇인가? 아내의 힐링과 나의 고통 사이에 접점을 찾아야 했다. 서귀포 신라호텔은 도저히 불가능하고 서귀포 칼 호텔로 최종 낙점되었다. 40년 전 신혼여행으로 처음 묶은 곳이 제주 칼 호텔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을 법도 했다.
갑자기 하루가 더 주어졌다. 나는 성판악을 가보고 싶었다. 오래 전 겨울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 공무로 왔을 때 하루가 자유롭게 주어져 한라산을 등반한 적이 있었다. 성판악에서 출발하여 정상에 오른 다음 관음사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바람과 함께 눈이 내려 백록담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하루 종일 산속을 걸으니, 무엇인가 내 몸 속에 명산의 기운이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아내도 그 경험을 잊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리 때문에 무리라고 무서워했다. 어쩔 수 없었다. 꿈을 접고 숙소에서 가까운 동네 숲을 1시간가량 걸었다.
우리는 중문단지로 이동하여 쇼핑도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은 호텔들이 이곳에 밀집해 있고 제주국제컨벤션센터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저기가 바로 가끔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가 와서 발언했던 곳인가? 내 주위에도 주식 투자하는 친구들이 많다. 어떤 친구는 골프를 치면서도 휴대폰을 꺼내놓고 수시로 첵크하면서 주식을 사고판다. 퇴직 이후의 한가한 시간을 온통 주식 투자에 집중하는 것 같다. 나도 한 때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한 1000만 원 정도를 삼성전자와 한미제약 주식을 산 적이 있다. 지금도 팔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이제 어떻게 휴대폰 앱으로 조작하는 지조차 까먹었다. 결국 우리의 삶은 시간이다. 죽음을 내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간은 우리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 그러나 주관적인 시간은 가능하다. 진정한 부자는 주관적인 시간을 의미 있게 쓴 사람일 것이다. 온전히 자기 시간에 몰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서귀포 대포동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아내는 무슨 생각인지 고급횟집으로 안내했다. 매일 바닷가를 돌면서도 처음으로 회를 먹었다. 그러나 맛있는 회를 먹으면서도 나의 마음은 온통 한라산에 가 있었다. 더군다나 7월 달에는 고등학교 동기들과 알프스 트레킹도 예약되어 있어 더 가보고 싶었다. 그래 성판악에 가서 휴게소까지만 걸어보자. 길지 않고, 평지처럼 판판하니까 아내도 걸을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전망 좋은 커피숍에 가자는 아내를 윽박질러 급히 산으로 차를 몰았다. 한라산은 과연 한라산이다. 서귀포에서 올라가는 길이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성판악 안내소에서 급히 산으로 뛰어 들어가려는데 입구가 잠겨 있었다. 동절기에는 12시 30분까지만 입산이 가능했다. 거기에다가 미리 예약을 해야만 탐방할 수 있었다.
산을 내려올 때는 여행의 신명이 사라지고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 유명한 천지연 폭포를 보아도 시큰둥하고, 산방산에 들러 힘들게 토굴에 올라도 별 기쁨이 없었다. 오늘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호텔에 들어가서 ‘오늘의 운세’를 살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