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10-4. 자아실현인

이효범 2022. 1. 27. 08:08

10-4. 자아실현인

 

전통적으로 건강한 성격에 대해 두 개의 개념이 있어 왔다. 그중 하나는 만족한 황소식의 접근 방법으로, 이것은 주로 스트레스의 징표 유무로 적응이 잘 되고 못됨을 평가하는 것이다. 즉 사람은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 잘 적응해야 하고 자기가 생활하고 있는 그 문화가 부과하는 역할, 사회 가치, 행동 양식들을 스트레스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건강한 인간은 마음이 편안하고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사회가 부과하는 사회적인 임무들, 예컨대 노동, 저축, 가족 부양 등등을 수행한다. 또한 스트레스의 신체적인 증상도 없고 사회 규범에서 이탈하는 일도 거의 없다. 적응이 잘 되고 있다는 것의 핵심은 온순함에 있다. 이 입장에서는 불안도 나쁘고, 스트레스 증상도 나쁘고, 사회 규범에 동조하지 않는 것도 나쁘다. 물론 일하는 데, 생산하는 데, 그리고 심지어 노는 데서도 비효율적인 것은 모두 좋지 않다.

그러나 괴테의 파우스트적인 전통에서 보이는 것처럼, 노력이 설사 실패로 끝날지라도 그것은 역시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불안이 오히려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도록 밀고 나가는 긍정적이고 강한 힘이 아닐까? 그러므로 오히려 정신 건강이란 정신적인 개인적 특질을 변경하거나 포기함으로써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환경의 극복일 수 있다. 매슬로우는 이렇게 성취 능력을 강조하는 입장에 있다. 그가 말하는 건강한 사람은 자아실현의 성취를 이룬 사람이다.

자아실현의 단계에 도달하면, 여러 가지 이율배반적인 것이 해결된다. 즉 서로 상반되는 것이 통일되고 이율배반적인 사고가 모두 미숙한 소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아를 실현하고 있는 사람에게서는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것이 한층 더 높은 차원에서 통일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이 곧 놀이이며, 휴가나 근무 기간을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맛본다면, 일하는 가운데에서 느낄 수 있는 고독감이나 상충되는 감정을 잊을 수 있다. 가장 성숙한 인간 세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이다. 건강한 어린이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성숙한 자아실현의 요소이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갈등이나, 자아와 자아 밖의 모든 것 사이의 갈등이 점차 희미해지고, 그 갈등이 높은 차원에서의 개성의 발달에 서로 융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아실현을 성취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점은, 그들은 프로이트식의 이율배반적인 것, 즉 의식, 전의식, 무의식을 통합시키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프로이트식의 본능이나 방어는 그리 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충동적인 기분도 자유롭게 표현되고 억제되지 않으며, 통제가 심하지 않으며 융통성이 있다. 초자아는 그렇게 엄격하지 않고, 에고를 상쇄시키지도 않는다.

일차적인 과정이 병적인 것으로 낙인찍히지 않고 일차와 이차의 지적인 과정이 모두 동등하게 취급된다. 더구나 절정絶頂의 경험(peak experience)에서는 그 벽이 모두 무너져 버린다. 절정 경험은 기쁘고 흥분되는 감격적인 순간, 즉 황홀하고 감동스럽고 경외스러운 감정을 경험하는 짧고 강렬한 느낌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형적인 프로이트 심리학의 입장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매슬로우는 절정 경험을 갖는 자들이 거의 대부분 건강한 자들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타입의 사람을 정상적인 최고의 건강(normal super healthy)을 가진 자들이며 절정자(peakers)’ 또는 초월자(transcenders)’로 불렀다.

건강한 사람은 또 다른 면에서 통합을 이루고 있다. 그들에게는 지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 그리고 운동 기능이 서로 이완되어 있지 않고, 어떤 목표를 수행할 때 서로 보완적인 통일성을 유지한다. 합리적이고 용의주도하게 내린 결론도 결국은 무작정 자신의 감정에 의존해서 내린 결론과 일치하게 된다. 그런 사람이 원하고 기뻐하는 것은 대체로 그에게 이로운 것이 된다. 그들의 즉흥적인 반응도 오래 생각하고 하는 행동이나 다름없이 유용하고 정확하다. 감각이나 운동 기능이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전통적인 합리주의 사고에서는 모든 기능이 수직적인 위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맨 꼭대기에는 이성이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건강한 사람이 무의식에서 전의식으로 침잠하고, 자신의 일차적 인지 과정을 신뢰하고 활용하는 능력, 자신의 즉흥적 기분을 억누르기보다는 받아들이는 능력, 두려움 없이 자발적으로 후퇴할 수 있는 능력 등이 창조의 가장 긴요한 요건이 된다. 심리적인 건강이 모든 창조 형태에 보편적인 이유가 되는 것이다.

또한 정신적 건강과 합리성과 불합리성이 통일되는 가교는 우리로 하여금 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즐기고, 사랑하고, 즐거움에 넘치고, 유머러스하며, 때로는 바보스럽게도 보이고, 공상적이고 변덕쟁이 같아 보이는가를 이해하게 한다.

미적인 직관이나 창조 행위, 그리고 미적인 절정의 경험은 인간 생활이나 심리학, 그리고 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모든 절정의 경험은 개인의 내면적 갈등이나,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 나라와 나라 사이의 갈등,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이다. 갈등과 대립을 통일시키는 것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이며, 따라서 절정의 경험은 건강한 상태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인생의 가치를 긍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왜 우리가 자살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대답이 될 수 있다.

자아를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시간이나 장소를 초월해서 살고 있다. 내부의 정신적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외부 세계의 법칙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고, 내부의 정신적 원칙에 지배된다. 경험이나 감정, 두려움, 희망, 사랑, , 예술, 환상 등의 세계는 인간의 본질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비정신적 세계와는 다르다. 이러한 내적이고 정신적인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그 세계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따라서 더욱 노력해야 하고 권태로우며 책임을 져야하는 외적인 사실의 세계와 비교할 때, 그 내적인 세계는 천국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바깥 세상에 한결 쉽고 즐겁게 적응하며, 현실을 한층 더 잘 측정하지만, 그것을 그의 내적인 정신 세계와 혼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적인 세계와 외적인 세계를 혼동하는 것은 분명히 정신병의 시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그 모두를 자기 세계에 통합시켜서 자유롭게 은신할 수 있는 자다. 교육은 사람이 이 두 세계를 모두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매슬로우는 자아실현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성들을 다음과 같이 17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자아 실현을 이룬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한층 더 정확한 지각과 그것에 대해 한층 더 수월하고 안정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은 자아, 자연 및 타인을 잘 받아들인다. 즉 그들은 죄악감, 수치심 또는 불안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은 비교적 자발적이며 자연스럽고 솔직하며 꾸밈이 없고 노력으로 인한 긴장 같은 것이 없다. 그들은 자기 중심적이기보다는 문제 중심적이다. 그들은 개인 생활을 위한 욕구를 가진다. 즉 그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불편 없이 즐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잠재 능력을 실현하는 가운데 그 잠재적 지원에 호소한다. 그럼으로써 그들 자신들의 성장과 발전에 의지하는 정도로 자아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된 만족을 외계에 의지하지 않고 자율적인 행동의 요인으로서 자신들의 의지와 자신들에게 맡기고 있다. 그들은 신비, 쾌락 및 황홀감에 쌓인 인생의 훌륭한 것에 대하여 항상 감상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감상력의 신선감을 계속 유지한다. 그들은 아들러Alfred Adler가 말하는 공동 사회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 즉 지역 사회 의식 또는 형제애, 일반적으로 인간에 대한 동정심과 애정을 갖는다. 그들의 대인 관계는 심오하고 매우 순수하며, 정열, 애정 그리고 동일시를 수반하며 자기의 경계선이 크게 축소되어 있다. 그들의 민주주의 태도는 계층, 인종, 교육 및 정치 등에 침투되어 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고결하다. 그들의 유머 감각은 누구에게나 적의적이거나 타인의 열등을 비웃거나 냉소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권위에 무조건 반발적인 것도 아니다. 즉 야비한 농담 같은 것이 아닌 철학적인 것이다. 창의성, 독창성, 그리고 발명력이 그들의 특성이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문화를 초월하기 때문에 문화의 동화를 거절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고 확인한다는 의미에서는 적응을 잘 하지 못한다. 그들이 평가하는 가치는 사회적 또는 신체적 실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과 성격을 그들이 철학적으로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이원적인 사고방식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통합된다. 즉 인지와 의욕, 이성과 본능, 두뇌와 심장 이러한 것들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면서 조화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