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9-5. 혁명과 개혁

이효범 2022. 1. 21. 07:29

9-5. 혁명과 개혁

 

스키너 이전의 서양 사상사에서는 전통적인 인간상人間像에 대해서 크게 세 번의 과학적科學的 타격이 있었다. 첫 번째는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의 지동설地動說로서 그것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무너뜨렸다. 두 번째는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으로서 그것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특수한 영적靈的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진화된 고등 동물에 불과함을 보여 주었다. 세 번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입장으로서 그것은 인간이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맹목적인 무의식적 충동에 의해 지배받는 존재라고 말한다.

과연 이제 스키너는 네 번째의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인간은 스스로 내재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 환경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존재일 뿐인가? 즉 인간은 자유와 존엄을 지녀서 자기 행동에 자기가 책임을 질 수 있는 자가 아니라, 환경의 노예이기 때문에 다만 환경의 통제와 지배를 받는 환경의 피해자 혹은 자신이 당하는 일을 피동적으로 지켜만 보는 존재로 낙하하고 말 것인가?

스키너에 따르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행동공학의 기술을 갖는 전문가들이 환경을 조작하고 일반인들은 거기에 잘 적응하면 된다. 그러나 전체주의를 막는 안전장치에 대한 그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든지 전문가들이 인간 사회를 개미 집단처럼 일률적으로 조화롭고, 능률적이고, 질서 있는 사회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가정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사회가 바람직할 것인가?

그러나 스키너처럼 행동을 순전히 인과적 법칙으로 분석하는 이론은 이 물음에 아무런 해답도 줄 수 없다. 즉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는 데에는 설령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정의, 시비, 진위 등 어떤 가치(평가)적 물음을 결정하거나 여과시키는 데에는 그의 이론이 아무런 근거도 줄 수 없다. 이유는 바로 이렇다.

스키너는 행동적 조건화하는 인과적 분석 방법을 가지고 모든 행동을 설명하고 예견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엄밀하게는 모든 행동에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하다. 따라서 시인하고 강화할 만한 행동의 형태와 그렇지 않은 행동의 형태를 가릴 어떤 가치적 근거도 우리에게 주지 못한다. 더군다나 스키너는 때때로 행동에 관한 평가적 물음을 제거해야 인간의 행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의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스키너 자체의 제안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현명한지 현명하지 않은 지를 평가할 수 없게 된다. 평가라는 가치 판단을 그가 배제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스키너의 제안을 설명하고 그가 그의 이론을 계속 진행시켜 나가리라는 것을 예견할 뿐이다. 덧붙여 말하면 스키너는 일반적 행동의 인과적 이론을 제시하고 자기 이론이 타당하다는 평가적 측면을 보냈는데, 후자에 대해서는 그의 어떤 이론도 그 기초를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간 생활에서 평가적 측면을 삭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 행동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키너처럼 이상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사회를 적극적으로 개혁하고 그 청사진에 의해서 사람들을 조건화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포퍼K. Popper처럼 그것은 개인적 선택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만 소극적으로 빈곤과 질병 같은 인간의 불행의 특정한 원인들을 제거해야만 하는지를 평가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이 양자의 길에서 우리는 기꺼이 전자에 동조할 수는 없다. 이 지상의 모든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가정이 타당하다면, 우리가 몇몇 과학적 전문가에게 그들이 비록 일반인보다 상대적으로 탁월한지는 몰라도 인류의 장래를 맡길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단편적이고 공상적인 유토피아Utopia, 즉 만인에게 최선의 것이라고 주장할 어떤 근거도 없는 미래 목표를 위해서 현실의 많은 대가를 희생시킬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런 시도의 실패를 이미 공산주의 운동에서 보았다. 비슷하게 우리는 과학적 전문가들이 환경을 교정하는 조작적 선택들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어떤 기준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스키너의 이론에 따라 환경을 인위적으로 그리고 급진적이고 전면적으로 변혁하려는 어떤 시도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스키너는 또한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고 인간이 존엄을 거부했다. 그리하여 그는 무생물에게 사고와 의도라는 속성이 있다고 하는 물활론物活論(animism)이 잘못이듯이 인간에게 욕구와 결단이 속한다고 보는 것도 오류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할까?

자유의지론과 대립되는 결정론은 모든 사람들이 그 앞의 원인들에 의해서 결정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스런 행동을 한다고 할 때의 자유라는 개념을 결과하다원인되다라는 개념과 모순되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강요강제와 양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원인을 전혀 갖지 않는 임의로운 행동으로 자유로운 행동을 이해할 것이 아니라, 행위자의 선택의 결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이 그들이 선택한 행동에 대해서 비록 그 선택 자체가 원인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인간은 자기 행동을 자신이 선택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에 동물과는 달리 자신을 변형시켜 나갈 수 있다. 자신을 끊임없이 형성시켜 나가는 점이 인간의 고유한 특징인지 모른다.

 

더 읽을거리

 

B. F. Skinner, 차재호 역,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 탐구당, 1983.

▪――――――, 김영채 역, ?행동주의?, 교육과학사, 1978.

임의영, ?스키너의 행동주의적 인간관?, 문학과 지성사, 1993.

한국행동과학연구소 편, ?인간이해의 새 지평?, 교육과학사,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