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환경 속의 인간
9-3. 환경 속의 인간
인간의 모든 행동은 강화 조건의 결과로 생긴다. 그러므로 상이한 강화 조건이 상이한 개인을 만든다. 여기서 스키너가 의미하는 강화 조건이란 행동이 일어나는 상황, 행동 그 자체 그리고 행동 뒤에 오는 강화적 결과간의 상호 관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강화 조건이란 행동이 일어나는 전체 상황,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스키너는 행동의 유전적 요소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사람은 각자 특이한 유전적 소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은 각자의 다양한 행동 방식과 삶을 결정한다. 그러나 스키너는 이 유전적 특징이 무엇인가를 확정시키는 것은 바로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어떤 환경 조건이 충분히 오랫동안 만족스럽다면 그 환경에 적합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종의 무리들만이 번식할 것이다. 또한 그 무리들은 결국 환경에 의해 선별된 독특한 유전적 특징들을 지니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한편 스키너는 실제적으로 인간을 다루면서 유전적 요소들은 변화되기 어렵고 실험자에 의해 조작될 수 없기 때문에 환경적 요소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한다.
스키너는 유전적 요소 이외에도 인간 행동을 본능에 귀속시키는 것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행동을 본능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환경이 행동에 작용하는 인과적 역할을 무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인간 행동을 욕망, 의도, 결단 등 일상적 개념이나 이드, 에고, 슈퍼에고 등 프로이트적 가정하에 정신적 실체로 설명하려는 어떤 시도도 배척한다. 이런 사람 속 인간(the inner man)을 행동 발생의 중심으로 삼는 설명 방식은 우리에게 최종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 같지만 사실 아무것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우리는 “왜 극장엘 가셨어요?”라고 물었을 때, “그저 가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하면 물음이 완전히 설명된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이것은 행동의 원인을 밝힌 것이 아니라 단지 그 행동을 되풀이해서 말한 것에 불과하다. 마치 이것은 아편은 수면 효과가 있기 때문에 사람을 잠들게 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행동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할 때 사람의 성격이나 마음의 상태들과 같은 자율적 인간이 지닌 부수물에 호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은 부산물이며 이를 원인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스키너는 행동의 원인을 외부 환경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환경의 역할이 아직 분명치 않기 때문에 정신에 의한 설명을 버리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설명적 실체인 정신이 직접 관찰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행동의 문제가 더욱 난관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애 동안 그가 어떤 환경 조건 속에 있었느냐가 그를 결정한다. 스키너는 정신적인 개념으로 행동을 설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관찰 가능한 행동의 원인만을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강력한 결정론적 입장을 취했다. 그러므로 환경 조건과 거기서 결과된 행동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지식만이 사람의 본질을 해명하는 가장 타당한 방법이 된다. 이에 스키너의 심리학은 환경의 영향을 직접 행동과 연결시켜 주는 법칙에 관심을 집중한다. 이런 입장에는 두 가지 가정이 깔려 있다. 즉 인간 행동은 어떤 종류의 과학 법칙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것과, 이러한 법칙들이 환경적 요소들과 인간 행동 사이에 인과적 관계(함수적 관계)를 밝혀 준다는 것이다.
이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서 스키너는 세밀하게 통제된 실험 조건 즉 스키너 상자 속에서 쥐와 비둘기를 가지고 연구했다. 그리하여 그는 매우 단순하지만 그 영향력이 굉장한, 행동의 작동적 조건화의 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스키너는 동물 실험으로부터 얻은 행동에 관한 지식을 인간 개인과 제도들, 그리고 정부와 종교의 정신요법과 경제학과 교육에 적용시켜 나간다. 그가 그의 이론을 인간 행동에 적용시킨 것들 가운데 매우 중요한 영역의 하나는 언어 행위이다. 언어 행위에서 모든 인간의 말은 말하는 사람의 환경에 의한 조건화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스키너는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언어에 대한 스키너의 설명에서 나타나는 결정적인 결함은 생성 문법의 창시자인 촘스키Noam Chomsky에 의해 지적되었다. 촘스키에 따르면 스키너가 어떻게 언어가 학습되는가를 설명하고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의 모국어로서의 하나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할 때 우리가 배우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즉 스키너는 사람이 언어를 ‘어떻게’ 배우게 되는지는 설명하지만, 과연 사람이 ‘무엇’을 배우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촘스키는 스키너의 설명이 가치가 없다고 논의한다.
인간의 언어는 쥐들이 지렛대를 누르는 것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현상이다. 스키너는 이 차이를 단지 복잡성의 정도에 관한 문제라고 보았다. 반면에 촘스키는 인간 언어의 창조적이고 구조적인 특성들, 예를 들어 우리 모두가 단지 우리 언어의 어휘와 문법 지식만으로 이전에 전혀 듣지 못했던 문장들을 말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방식 같은 것이, 인간의 언어를 그 어떤 알려진 동물의 행동과는 본질상 아주 다른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언어를 하등 동물의 행동으로부터 이끌어 낸 용어로 분석하고자 하는 스키너의 시도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스키너의 이론들이 인간 언어에 적용될 때 실패하게 되는 또 하나의 주요한 요인은, 언어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것은 환경보다는 유전적인 요소, 즉 말하는 사람의 언어 습득 능력이라는 것이 촘스키의 주장이다. 영국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고, 한국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운다. 따라서 환경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모든 정상적인 아이들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언어를 배운다. 그들은 무한히 많은 복잡한 문장들을 문법의 규칙에 따라서 형성한다. 이런 점에서 동물들이 그들의 어미를 따라 수행하는 언어 행위는 인간의 것과는 다른다. 이러한 언어의 습득 능력은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이다.
그러나 스키너는 인간의 언어 학습은 오로지 인간적 환경으로부터 오는 일련의 복잡한 강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촘스키는 어린아이들이 매우 한정되고 불완전한 예문을 접하더라도 매우 빠르게 문법 규칙들을 배운다고 말한다. 이런 독특한 점은 오직 인간에게만 언어를 처리할 수 있는 생득적인 능력이 있다는 가정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는 것은 물론 유일한 인간 활동은 아니다. 그러나 말은 고등 동물인 인간의 정신 능력의 한 표본으로서 특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인간 행동의 다른 중요한 측면들도 환경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생득적인 것일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