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7-8-2. 성적 발달

이효범 2022. 1. 2. 08:05

7-8-2) 성적 발달 : 인간의 성행위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을 포함한 어떤 영장류보다 훨씬 격렬하다. 다른 영장류들한테는 지루한 구애 단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원숭이나 유인원 가운데 한 쌍의 암수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관계를 맺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교 이전 단계는 아주 짧고, 이 단계에서 보이는 행동 양식은 대개 몇 가지의 얼굴 표정과 간단한 발성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성교 자체도 아주 짧다. 예를 들어 긴팔원숭이과에 속하는 비비원숭이의 경우에는 수컷이 암컷 위에 올라타고 사정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7초 내지 8초에 불과하다. 암컷은 어떤 종류의 쾌감도 느끼는 것 같지 않다. 오르가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 해도 인간 여자의 반응에 비하면 지극히 사소한 반응일 뿐이다.

원숭이나 유인원 암컷이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기간은 인간 여자보다 훨씬 제한되어 있다. 그들의 발정기는 대개 한 달에 일주일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이것도 하등 포유동물에 비하면 상당히 진보한 것이다. 하등 포유동물의 경우에는 배란기에만 발정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경우에는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영장류의 경향이 극한까지 진행되어, 인간 여자는 사실상 언제라도 남자의 성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 원숭이나 유인원의 암컷은 일단 임신하거나 새끼를 기르게 되면 성적 활동은 중단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기간에도 성행위를 하기 때문에, 짝짓기가 심각한 제한을 받는 것은 출산을 전후한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인간은 분명히 모든 영장류 가운데 가장 성적인 동물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기원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는 생존하기 위하여 사냥을 해야 했다. 둘째, 그는 사냥꾼으로서 열등한 몸을 벌충하기 위해 한층 더 우수한 두뇌를 가져야만 했다. 셋째, 두뇌를 더 크게 키우고 그 두뇌를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을 더 연장해야만 했다. 넷째, 암컷은 수컷이 사냥하러 나가 있는 동안 집에 남아서 새끼를 키워야 했다. 다섯째, 수컷들은 사냥할 때 서로 협력해야만 했다. 여섯째, 사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똑바로 서서 손에 무기를 들어야 했다.

이런 요소를 기초로 해서, 우선 털 없는 원숭이의 수컷은 암컷을 놓아두고 사냥하러 떠날 때, 암컷이 수컷에게 정절貞節을 지키리라고 확신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암컷은 한 마리의 수컷하고만 짝을 짓는 경향을 계발해야 했다. 또한 사냥할 때 힘이 약한 수컷의 협력을 얻으려면 그런 수컷한테도 일정한 성적 권리를 인정해 주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수컷들은 암컷들을 더욱 균등하게 나누어 가져야 했을 테고, 성적인 조직체는 한층 더 민주적으로 발전하면서 전제적인 면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수컷도 역시 한 마리의 암컷하고만 짝을 짓는 강력한 경향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수컷들은 치명적인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암컷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은 전보다 훨씬 위험해졌다. 이것도 역시 수컷이 한 마리의 암컷으로만 만족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게다가 천천히 성장하는 새끼 때문에 부모의 부담이 훨씬 무거워졌는데, 수컷은 아버지다운 행동을 계발해야 했고, 암컷과 더불어 부모의 의무를 분담해야 했다. 이것도 강력한 한 쌍의 암수 관계를 맺어야 할 또 하나의 좋은 이유였다.

이런 상황에서 털없는 원숭이는 사랑에 빠지고 하나의 짝한테만 성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고, 한 쌍의 암수 관계를 발전시키는 능력을 계발해야 했다. 그는 영장류로서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짝을 지었다가 헤어지는 경향을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짧고 느슨한 한 쌍의 암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연장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를 도와준 것 가운데 하나는 어린 시절이 길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랜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부모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을 기회를 가졌다. 이 관계는 새끼 원숭이가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관계보다도 훨씬 강력하고 지속적이었다. 성숙하여 독립하는 동시에 부모와의 이런 유대를 잃어버리는 것은 관계의 공백 상태를 초래할 터였다. 이 공백은 다른 것으로 메워져야만 했고, 그래서 그는 부모와의 관계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새로운 관계를 갈망하게 되었다. 부모한테서 독립할 때 그는 이미 이런 관계를 맺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필요성은 충분히 커져서 새로운 형태의 암수 관계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지만, 그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는 아직 많은 보완책이 필요했다. 그 관계는 적어도 새끼를 기르는 지루한 과정이 끝날 때까지는 지속되어야 했다. 그는 길고 자극적인 구애 단계를 발전시켜 사랑에 빠질 수는 있었지만 일단 사랑에 빠진 뒤에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사랑을 유지하는 가장 간단하고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암수의 성행위를 좀더 복잡하고 더욱 보람있게 만드는 일이었다. 다시 말하면 섹스를 더욱 섹시하게 만든 것이다.

오늘날의 털 없는 원숭이의 행동을 보면 이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여자의 발정기가 길어진 것을 출산율 늘리기라는 관점에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여자가 아기를 키우는 동안에도 성교할 준비를 갖추고 있으면 출산율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자녀가 부모에게 의존하는 기간이 아주 길기 때문에, 자녀를 키우는 동안 여자가 성행위를 하지 못한다면 큰 재난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자가 한 번의 월경 주기가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줄곧 남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고, 자극을 받으면 언제든지 성적으로 흥분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여자는 한 번의 월경 주기 동안 딱 한 번만 배란을 하기 때문에, 다른 때의 짝찟기는 생식 기능을 전혀 가질 수 없다. 우리 인간이 성교를 많이 하는 것은 자녀를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 짝에게 보상을 줌으로써 한 쌍의 암수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짝을 지은 한 쌍의 남녀가 되풀이하여 성행위를 하는 것은 분명 세련되고 퇴폐적인 현대 문명의 부산물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깊이 뿌리 박힌 경향, 즉 생물학적으로 볼 때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으며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적절한 경향이다.

여자는 임신했을 때도 여전히 남자에게 반응을 보인다. 이것도 매우 중요한 특성이다. 한 쌍의 남녀가 짝을 이루는 체제에서 남자가 너무 오랫동안 욕구 불만을 느끼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쌍의 암수 관계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성행위 자체도 정교해졌다. 사냥하는 생활은 우리에게 털 없는 피부와 민감한 손을 갖다 주었고, 성적 자극이 강한 신체 접촉의 범위도 훨씬 늘려 주었다. 성교 이전 단계에서 자극적인 신체 접촉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쓰다듬고 문지르고 누르고 애무하는 행위는 다른 어떤 영장류한테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이 나타나고, 정도도 훨씬 심하다. 또한 입술과 귓불, 젖꼭지, 젖가슴과 생식기처럼 분화한 신체 기관에는 말초 신경이 풍부하게 분포되어 있어서 성적 자극에 극도로 민감하다. 사실 귓불은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서만 진화한 것처럼 보인다. 해부학자들은 귓불을 무의미한 부속물이라고 부르거나 사마귀처럼 아무 쓸모도 없는 지방질의 이상 생성물이라고 부르곤 했다. 일반적으로 귓불은 우리가 큰 귀를 갖고 있던 시절의 유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영장류를 살펴보면 살덩어리인 귓불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귓불은 결코 유물이 아니라 새로 진화한 신체 기관인 것 같다. 성적으로 흥분했을 때 귓불이 충혈되어 부풀어오르고 자극에 극도로 민감해지는 것을 보면 귓불의 진화는 오로지 또 하나의 성감대를 만드는 것과 관계가 깊은 것 같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앞으로 툭 튀어나온 통통한 코도 해부학자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독특하고 신비로운 신체 기관이다. 해부학자들은 코를 기능적으로 아무 의미도 없는 군살의 일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다른 영장류의 부속물에 비해 그토록 눈에 띄는 독특한 신체 기관이 아무 기능도 없이 진화했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코의 양쪽 옆에는 해면체의 발기성 조직이 들어 있어서, 성적으로 흥분하면 그 부위에 피가 몰려 코가 커지고 콧구멍이 팽창한다는 것을 알면 아마 놀랄 것이다.

신체 접촉의 부위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시각적 발전도 이루어졌다. 여기서는 복잡한 얼굴 표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표정의 진화는 성행위만이 아니라 다른 면에서 의사 전달과도 관계가 있다. 우리는 영장류로서 어떤 영장류보다도 복잡하고 잘 발달한 얼굴 근육을 갖고 있다. 사실 우리의 얼굴 표정은 살아 있는 모든 동물들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복잡하다. 우리는 입이나 코, , 또는 눈썹 주위의 살이나 이맛살을 살짝 움직이거나 이런 근육의 움직임을 다양하게 결합하여, 복잡한 감정 변화를 모조리 전달할 수 있다. 남녀가 만날 때 특히 초기의 구애 단계에서는 이런 얼굴 표정이 지극히 중요하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눈동자도 팽창하는데, 비록 미미한 변화이긴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깨닫는 것보다 훨씬 더 거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흥분하면 눈동자가 커질 뿐 아니라 눈 표면도 번들거린다.

입술도 다른 영장류한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신체 기관이다. 물론 영장류는 모두 입술을 갖고 있지만, 우리처럼 뒤집혀 있지는 않다. 침팬지는 못마땅할 때면 입술을 쑥 내밀고 뒤집어서, 평소에는 입 속에 숨어 있는 점막을 드러내 보인다. 그러나 이런 표정은 잠시만 유지될 뿐, 침팬지는 곧 여느 때의 얇은 입술을 가진 얼굴로 되돌아간다. 반면에 우리 입술은 항상 바깥으로 뒤집혀 둥글게 말려 있다. 따라서 침팬지한테는 우리가 항상 뾰로통해 있는 것처럼 보일 게 틀림없다. 침팬지는 사람과 친해지면 끌어안고 목에다 격렬한 입맞춤을 퍼붓는다. 침팬지한테는 이것이 성적 신호가 아니라 반갑다는 인사지만, 우리한테는 두 가지 의미로 모두 쓰인다.

입맞춤은 특히 성교 이전 단계에서 가장 잦아지고 접촉 시간도 길어진다. 민감한 점막이 항상 노출되어 있으면, 오래 입을 맞추는 동안 입주위의 근육을 특별히 수축한 상태로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더욱 편리할 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노출된 점액질 입술은 윤곽이 뚜렷하고 독특한 모양을 갖게 되었다. 입술은 주위 피부와 뒤섞이지 않고 고정된 경계선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입술은 시각 신호를 보내는 중요한 장치가 되었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입술은 부풀어오르고 붉어진다. 이 부위가 뚜렷한 경계선을 갖고 있으면 입술 상태의 미묘한 변화를 한층 더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신호를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흥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입술은 나머지 얼굴 피부보다 더 붉기 때문에, 생리적 상태 변화를 나타내지 않더라도 입술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광고 효과를 갖는다. 다시 말하면 그 붉은 색깔은 접촉할 수 있는 성감대의 존재를 널리 알려 이성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분명히 성적 의미를 가진 시각 신호는 그 밖에도 수없이 많다. 사춘기에 이르면 기능적으로 완전히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상태에 도달했다는 신호로 생식기와 겨드랑이 부위에 눈에 띄게 털이 나고, 남자일 경우에는 얼굴에도 거뭇거뭇한 털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여자는 젖가슴이 급속도로 성장한다. 체형도 바뀌어서 남자는 어깨가 벌어지고 여자는 골반이 벌어진다. 이런 변화는 성적으로 성숙한 사람과 성숙하지 못한 사람을 구별해 줄 뿐 아니라, 성숙한 남자와 성숙한 여자도 구별해 준다. 이런 변화는 성적 체계가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신호인 동시에, 그 개체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알려 주는 신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