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88. 어떤 만남)

이효범 2021. 11. 25. 15:58

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88. 어떤 만남)

 

o 어떤 만남

 

구녕 이효범

 

당신을 만난 봄날만을 기억하겠습니다.

소설처럼 긴 이야기가

당신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겠지만

함박웃음으로 온 순간부터가

당신은 당신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당신을 만나고 나는 내가 되었습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일상의 말이 모두 노래로 바뀌었습니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로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옷을 벗어 던지고 샘물을 찾아

더 깊은 숲속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숲은 어둡고 추웠습니다.

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떠난 가을날만을 기억하겠습니다.

소설처럼 긴 추억이

당신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겠지만

눈물로 떠난 그 순간부터가

당신은 당신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당신을 떠나고 나는 내가 되었습니다.

 

후기:

사람이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늑대와 함께 자라면 늑대 소년이나 소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과 만나야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만남으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와 너를 쓴 마틴 부버(Martin Buber)에 의하면 만남에는 나-그것의 만남과 나-너의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의 만남은 판매원과 소비자처럼,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만남입니다. 칸트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는데, 그것과 상반되는 이 만남은 내 목적이 달성되면 관계가 곧 끝나는 그런 만남입니다. 그러나 나-너의 만남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입니다. 이런 만남으로 우리는 너가 웃으면 나도 함께 웃고, 너가 울면 나도 함께 울면서 진정으로 기쁨과 슬픔을 맛봅니다. 이런 경험으로 우리는 비로소 사람이 됩니다. 진정으로 슬퍼하고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 짐승이지,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여러 만남을 가집니다. 어떤 만남은 나를 뿌리 채 흔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가는 길도 바꾸고 나는 새로운 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