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 2021. 10. 25. 07:51

2-3-3. 극기복례

 

그러면 어떻게 군자가 될 수 있는가?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을 체득해야 한다. 인을 체득하는 것은 어렵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인에 머무는 것을 자기의 의무로 하였으니 어찌 무겁지 않은가? 죽은 다음에야 그만 두게 되니 어찌 멀지 않은가!

 

인이 멀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그런 인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곧 인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인에 도달하는 길은 자기 결단에 의한 것임을 알고 가까운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에 도달한다는 것은 자기에게 달린 것이지 어찌 남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겠는가?

 

사랑의 감정인 인은 가장 원초적 공간인 가정 안의 부모와 형제 관계에서부터 체현된다. 사랑하는 감정은 부모에게 효로 나타나고, 형제에게는 제로 나타난다. 그리고 친구에게는 신으로, 사람들에게는 충으로 전개된다. 이것이 정치에 임해서는 인의 정치인 덕치德治와 예치禮治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규범들의 성질은 서로 다르지 않다. 이 규범들은 항상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동일한 감정을 내면에 유지하면서, 상대방에 따라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

공자의 교육 내용을 가리키는 말로 사교四敎가 있다. 이것은 인의 실현을 위한 전체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사교 가운데 문은 육예六藝의 문으로서 지식의 획득에 관련되며, 은 행위와 실천으로서 덕행을 가리키며, 과 신은 각각 성실과 신의를 뜻하는 것으로서 행의 대표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교는 크게 문과 행, 즉 지식과 덕행을 의미한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교에서 보이듯이 지식과 덕행을 쌓아야 한다. 그런데 덕행을 쌓기 위해서는 예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의례)는 과거 성인들의 통찰로부터 모은 도덕적 원칙들의 집합으로 군자라는 도덕적 완성을 향한 행동의 지침이 된다. 공자는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예(행위 규범들)를 강조하는데, 그것을 관통하는 행위의 준칙은 서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제가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서이다. 자기가 하고자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는 자기를 미루어 남을 이해하는 용서의 정신이다. 이것은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다른 사람의 형편을 헤아리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이다. 공자를 이은 맹자도 이런 정신을 강조했다. “우리 집 노인을 섬기듯이 남의 집 노인을 섬기며, 우리 집 아이를 보살피듯 다른 집 아이를 보살펴라.”대학에서는 이것을 혈구지도絜矩之道로 설명한다. “이른바 천하를 화평하게 만드는 일은 그 나라를 다스리는 데 달려 있다.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며 백성들 사이에 효가 일어날 것이고, 윗사람이 연장자를 연장자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이를 따라 할 것이며, 윗사람이 고아를 긍휼이 여기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혈구지도를 지켜야 한다. 위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며, 아래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도록 하지 말 것이다. 앞에서 싫어하는 것을 뒷사람의 앞에 놓지 말고, 뒤에서 싫어하는 것인데도 앞사람을 따르도록 하지 말 것이다. 오른쪽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왼쪽과 사귀지 말 것이며, 왼쪽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오른쪽과 사귀지 말 것이다.”

용서를 실천하는 군자는 선입견을 조심해야 한다. “천하의 어떤 일에 대해서도 미리 찬성하거나 반대하지 말며, 도의에 따라 행해야 한다.” 이것은 미리 선입견을 가지고 무조건 아니라고 반대하거나, 언제나 아첨하여 무조건 긍정하는 태도를 경계한 말이다. 공자의 이 말은 사실 시의성時宜性으로서의 중용中庸을 표현했다고도 볼 수 있다. 중용은 유학에서 가장 강조된 행위기준이다. 중용<중용장구中庸章句>를 쓴 주자는 서문에서 도통道統 이야기를 한다. 전설적인 중국 성왕인 요 임금은 순 임금에게 왕위를 넘기면서, “정성을 다해 그 중도를 지켜 나가라라고 말한다. 다시 순 임금은 우 임금에게 왕위를 넘기면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잘 드러나지 않으니, 정밀하게 살피고, 도심을 한결같이 보존하여 정성을 다해 그 중도를 지켜 나가라라고 당부한다. 그러므로 유학에 의하면 제왕이 천하를 통치하는 준칙 그리고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보편적 도덕적 법칙은 중용이다.

중용은 지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는 상태 즉 과불급過不及 하지 않고 치우지치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적당한 중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산술적인 중간은 어떤 의미에서 악이지 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용은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도덕적으로는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선을 가리킨다. 맹자는 공자를 시중지도時中之道를 실천한 성인으로 평가한다.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두어야 하면 그만두었으며, 오래 머물러야 하면 오래 머물렀고, 빨리 그만두어야 하면 빨리 그만둔 인물은 공자였다.”

시의성時宜性으로서의 공자의 중용은 융통성으로 대표되는 맹자의 권도權度 개념과 연결된다. 생명의 가치를 중시한 양주楊朱는 털 하나를 뽑아서 세상을 이롭게 한다고 해도 하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위아주의爲我主義(이기주의利己主義)를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묵자墨子는 유교의 차별적인 사랑에 반대하여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라는 겸애주의兼愛主義를 주장하였다. 그는 이마가 닳고 발꿈치가 떨어져 나가더라도 천하가 이롭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맹자는 양주의 이기주의는 군주를 무시하는 것이고, 묵자의 박애주의는 부모를 무시하는 것으로, 이것은 다름 아닌 금수라고 비판하였다. 이런 양 극단에 대해서 자막子莫은 중간을 고집하였다. 이에 맹자는 중을 취하되 권도(변통)가 없으면 그것은 승냥이나 늑대 같은 자로, 하나를 고집하는 것과 같다고 질책하였다. 권도란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잡아 구하는 것과 같다. 남녀가 직접 손을 잡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이런 경우까지 융통성 없이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단순한 하나의 고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맹자가 하나만을 고집하는 것을 극히 미워한 이유는, 그것이 하나만을 치켜세우다가 백을 버리게 되어 도를 그릇 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용장구>에서 주자는 말한다. “권은 저울의 추로서 물건의 가볍고 무거움을 달아서 그 가운데를 취하는 것이다. 가운데를 잡지만 권이 없으면 하나로 정해진 가운데에 교착하여 변함을 알지 못한다. 이 또한 하나를 고집하는 것이다. 가운데를 고집하는 것은 시중時中에 해가 된다. (...) 도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중이며, 중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 권이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덕행과 더불어 지식이 긴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지식을 추구해야 하는가? 공자는 사학병진思學竝進을 강조한. 사학병진에서 말하는 사는 내성적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심사명변深思明辯하여, 인생의 태도를 지각하려는 것이다. 공자에 따르면 군자에게는 아홉 가지의 생각하는 일이 있다.

 

첫째, 보는 데는 뚜렷이 보기를 생각하고, 둘째, 듣는 데는 똑똑하게 듣기를 생각하고, 셋째, 안색은 부드럽게 하기를 생각하고, 넷째, 용모는 공손하게 하기를 생각하고, 다섯째, 말은 성실하게 하기를 생각하고, 여섯째, 일을 함에는 공경스러울 것을 생각하고, 일곱째, 의심나는 것에는 묻기를 생각하고, 여덟째, 분이 날 때는 어려운 일을 당할 것을 생각하고, 아홉째, 이득이 있을 것을 알면 그것이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사학병진에서 말하는 학은 학문의 방법으로 타인의 경험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박학博學, 심문審問하여, 자신의 주관을 충실케 하려는 것이다. 이런 사와 학은 새의 양 날개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어느 하나를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래서 공자는 강조한다. “배우되 사색하지 않으면 종잡을 수 없을 것이요, 사색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울 것이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학병진의 지식, 지혜 추구 이외의 심성 수련이 필요하다. 그 방법이 극기복례克己復禮이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구하는 방법이다. 하루라도 극기복례하면 천하 사람들이 그에게 인을 돌릴 것이다. 인을 하는 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지 남에게서 말미암겠는가?

 

안연顔淵이 극기복례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물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이것이 공자가 말하는 절사絶四이다. 절사를 통해서 생물학적인 자아인 기를 이겨 예에 부합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 생활을 몸소 실천하는 자가 군자이며, 그 구체적인 모습은 공자가 70세에 도달했다는 종심소욕從心所欲 불유구不踰矩(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음)의 경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