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예문
옛날 어느 양반이 한 고을을 지나다 우연히 상놈의 집 제사지내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무슨 음식인지 김이 무럭무럭 하는 것을 제상 밑에다 놓고 절을 하고 있었다. 하도 이상하여 제사가 끝난 뒤에 그 주인에게 묻기를 “무슨 음식을 제상 위에 놓고 지낼 일이지, 제상 밑에 놓고 지낸단 말이냐?” 하였다. 그랬더니 그 주인 대답하기를 “그건 다름이 아니오라 개고기였사옵니다. 제 아비가 생전에 개고기를 무척 즐겼사온데, 죽었다고 입맛이야 변했을 리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 아무리 상것이지만 제상에 개고기 올린다는 말은 못 들었기에, 생각다 못해 제상 밑에 놓고 지낸 것입니다. 귀신이야 상 위에 있으나 상 밑에 있으나 찾아 잡수셨을 것 아닙니까?”하더란다.
상놈의 이 말을 들은 양반이 비로소 무릎을 탁 치면서 “옛말에 예출어정(禮出於情)이요 정출어근(情出於近)이라 하여 사람의 예의는 정으로부터 나오고 정은 가까운 데서부터 나온다 했으니 너의 그 제례야말로 참된 예절이로다.”하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 양반이 다시 다른 고을에 들렀을 때 또 어느 상놈의 집 제사 지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온 가족이 제상 앞에 늘어서서 초저녁부터 계속 절을 하는데, 한밤중 제사가 파할 때까지 하염없이 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양반 생각하기를, 기제사의 경우 모든 제관이 다같이 절을 하는 것은 참신(參神)과 사신(辭神)이라 하여 처음과 끝에 하는 두 번으로 족한 법이고, 이것이 가례(家禮)인데 무슨 절을 온 가족이 저리 한없이 하는가 싶었다.
그래서 제사를 파하기를 기다려 그 주인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가 대답하기를 “양반님네야 유식하니까 귀신이 언제 왔다 언제 가는지 알아서 그 시간에 맞추어 절을 하시면 되지만, 저희 같은 상놈이야 무식하니까 귀신이 언제 와서 언제 가는지 알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밤새도록 이렇게 절을 하다보면 그 중에 한 번은 틀림없이 우리 아버지가 받았을 게 아닙니까?”하더란다.
이 말을 들은 양반이 감복하여 탄식하기를 “네 말이 옳구나! 예로부터 가가예문(家家禮文)이라 하여 집집마다 예법이 따로 있다니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로다.” 하였다.
<홍일식,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