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능의 효행
전라도 장성현의 어느 선비의 집에서는 밤마다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어느 날, 마을의 한 노인이 그 선비의 집을 찾아가 물었다.
“자네는 그토록 글을 열심히 읽으면서 왜 과거는 보려 하지 않는가?”
“송구스럽습니다.”
선비는 공손하게 절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이보게, 낙방은 두려워 말고 과거 때마다 나서서 실력을 겨루게나. 진사 벼슬이라도 한다면 영광이 아니겠는가?”
마을 노인이 다시 한 번 넌지시 말을 건네자, 선비는 그 때서야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제가 과거에 나가지 않는 것은 낙방을 두려워해서가 아닙니다.”
“아니 그럼 무슨 특별한 까닭이라도 있단 말인가?”
“어르신도 알고 계시겠지만 제 어머니께서 점점 기력을 잃고 계십니다. 그런데 제가 벼슬을 해서 집을 떠나게 되면 어머니를 모실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저는 다만 그것이 염려될 뿐입니다.”
선비의 말에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다니······. 역시 자네는 효자로세.”
“그런 말씀 마십시오.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선비는 고개를 숙이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이 젊은이가 바로 고려 23대 고종 때의 이름난 효자 서능이었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어머니의 목에 부스럼이 난 것을 발견하고, 서능은 곧 의원을 불렀다.
“어떻습니까? 곧 나으실 수 있겠지요?”
환자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 의원에게 서능이 물었다. 하지만 의원은 어두운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안됐소만, 이것은 악성 종기라서······.”
“무슨 말씀입니까? 나을 수 없는 병이란 말씀입니까?”
서능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올시다. 방법이 하나 있긴 하지만, 계절이 계절인지라······.”
“의원님,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서능은 의원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산 개구리만 있다면 어떻게든 모친의 종기를 고쳐 보겠소만······.”
“예? 이 엄동설한에 살아 있는 개구리를 구하란 말씀입니까?”
서능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당치않은 소리를 해서 마음을 괴롭힌 것 같소. 일단 더 심해지지나 않도록 약을 지어 줄 테니 한번 드시게 해 보시오.”
의원은 약을 지어 주고 돌아갔다. 멍하니 앉아 있던 서능은 곧 정신을 차리고, 마당 한쪽에 있는 오래 된 느티나무 옆에서 정성껏 약을 달이기 시작했다. 참숯이 타는 냄새와 약 냄새가 집안에 가득 퍼졌다. 바로 그 때였다. 느티나무 밑동에 있는 우묵한 구멍 속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엉금엉금 기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무 밑동의 뚫린 구멍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참숯 냄새와 약 냄새를 견디지 못해 기어 나왔던 것이었다.
“개구리다!”
서능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개구리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그 느티나무를 향해 넓죽 절을 올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서능이 잡아 온 개구리를 보고 의원도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의 효성이 지극하니 하늘이 감동하여 개구리를 보내신 듯하오. 자아, 이제 내 처방대로만 하시오.”
의원이 가르쳐 준 대로 개구리를 넣은 약을 쓰니 과연 얼마 가지 않아 어머니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병석에서 일어나 개구리가 제 발로 기어 나온 이야기를 들은 서능의 어머니가 말했다.
“칠성님이 도우셨구나! 내 그냥 있을 수가 없지.”
어머니는 느티나무 아래서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수없이 절을 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서능은 어머니 곁에서 함께 절을 하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칠성님, 저희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 합니다. 저의 소원은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이오니 늘 보살펴 주옵소서.’
기도하는 어머니와 아들의 어깨 위로 풍년을 기약한다는 듯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서능의 효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