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83, 고요한 아침)
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83, 고요한 아침)
o 고요한 아침
구녕 이효범
존재가 드러나는
여명이 좋다.
나날이 새날이다.
일찍 일어난 새가 강에서 날고 있다.
오늘은 누굴 만날까?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원수는 오직 자신뿐
가상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도 반갑다.
친구에게 얻어먹지 않고
커피 사줄 돈이 있어 감사하다.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테니스를 칠 것이다.
저녁은 외식을 해볼까?
그러나 싫어지면 그만 둘뿐
해야 할 의무란 없다.
차마 버릴 수 없는 한 가지는
늙은 마누라를 보살피는 일
양반이 스스로 밥을 할 수 없으니
시냇물처럼 잔소리도 정겹다.
어제처럼
내일도 임재할 것이다.
후기:
코로나가 우리를 위협하지만 나날이 좋은 날입니다. 이른 아침 높은 아파트에서, 동산 위 아스라이 밝아오는 여명(黎明)을 바라보면 오늘도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제도 참 잘 잤습니다. 불안한 꿈으로 쫓기지 않고 꿀잠을 잔 날은 머리가 맑아지고 생기가 돕니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사나 걱정했는데, 막상 늙어 직장에서 밀려났어도 인생은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그동안 못해본 것들을 해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제 이모작 인생에서, 한 여자와 40년 사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라’라고 호통 친 삼성 이건희 회장보다 더 혁신적으로, 인생의 짝을 바꿔보면 어떨까 속으로 생각해보지만, 그랬다가는 맞아 죽을 것 같아 끽소리 못하고 삽니다. 곧 한가위에 조상님도 찾아뵈어야 하니, 아무래도 오래 쓴 것처럼 편안한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