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5, 우연, 의도확대, 허수아비의 오류)

이효범 2021. 9. 10. 07:03

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5, 우연, 의도확대, 허수아비의 오류)

 

구녕 이효범

 

3-4. 우연의 오류(fallacy of accident, 원칙 혼동의 오류)

 

어떤 원칙이든지 적용될 수 있는 일정한 조건들이 있다. 그러나 원칙 자체에는 그러한 조건들이 명시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원칙을 잘못 적용하는 수가 있다. ‘물은 섭씨 100도에 끓는다.’는 것이 물리학적 원칙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해면에 가해지는 대기 압력의 상태에서만 그렇지 높은 산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산에서 100도까지 가열하기도 전에 끓는다고 그 액체가 물이 아니라고 할 경우, 우연의 오류에 빠진다. 우연의 오류는 어떤 일반적인 원칙을 우연적인 상황으로 말미암아 도저히 적용할 수 없는 데도 무리하게 적용할 때 범하게 되는 오류이다. 이것을 원칙 혼동의 오류라고도 한다.

 

플라톤의 국가(The Republic)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되어 있다. “만일 제 정신일 때 나에게 무기를 빌려준 친구가, 제 정신이 아닐 때 나에게 와서 무기를 돌려달라고 하면, 그에게 무기를 돌려주어야 할까? 돌려주지 말라야 할까?” 잘못된 농간에 넘어가 친구는 극도로 화가 치밀어 그 무기로 자기의 순진한 아내를 죽이려고 한다. 이런 비상 상황에서도 빌린 물건은 돌려주어야 한다라는 일반 원칙에 따라 친구에게 무기를 돌려주었다면, 그 사람은 원칙 혼동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3-5. 의도확대의 오류(intentional fallacy)

 

이 오류는 의도한다’, ‘바란다’, ‘희망한다’, ‘믿는다’, 생각한다등과 같은 지향적 태도를 나타내는 동사와 관련된 오류이다. 그런 지향적 태도를 가진 자의 의도를 너무 확대할 때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그리스의 비극적인 영웅 오이디푸스(Oedipus)는 숲속에서 사냥하고 있는 귀족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는 그 귀족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몰랐다.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였다고 결론한다면 의도를 너무 확대한 오류이다.

 

로마 카톨릭은 어떤 경우의 인공임신중절(낙태)도 금하고 있다. 임신중절에 관한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자궁암에 걸린 임산부의 자궁암 수술 결과, 태아가 사망하거나 제거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허용하고 있다. 소위 이중효과의 원리가 그것이다. 자궁암을 제거할 의도를 가지고 있고, 이 수술이 태아를 사망케 할 것이 예측되지만, 태아의 사망을 의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궁암 수술로 인한 태아의 제거를 인공임신중절의 경우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로마 카톨릭의 입장에 반하여, 그러한 경우의 태아 제거도 인공임신중절로 보아야 한다면, 의도를 너무 확대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3-6. 허수아비의 오류(straw man fallacy)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주장을 고의적으로 또는 우발적으로 오해할 수 있다. 허수아비의 오류란 어떤 주장을 오해하여 그 주장을 반박하려고 할 때 범하게 되는 오류이다. 논박하려는 상대방의 주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의 주장을 논박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주장과 비슷하지만 약점이 많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비난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다음의 예를 살펴보자.

 

전경련은 정부가 기업경영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히 정부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정부가 없다면 국방은 누가 담당할 것이며, 사회질서를 위한 치안과 법집행은 누가 수행할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정부의 역할을 포기할 수 없으며, 따라서 전경련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기업경영에 관한 지나친 정부의 간섭을 비판하는 것은 정부를 없애자는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정부를 없애자는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해서 지나친 간섭을 말라는 전경련의 주장이 곧바로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논변은 전경련의 주장을 왜곡시키고 그 왜곡시킨 허수아비를 공격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