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3, 연비어약)

이효범 2020. 2. 9. 15:21

o 연비어약 鳶飛魚躍*

 

또박 이효범

 

솔개는 날고 물고기는 뛴다

어릴 때 우리 마을의 풍경이다

나는 놈과 뛰는 놈의 본성이 같다

비약이다.

 

비약은 논리를 벗어난다

논리를 벗어나는 것은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은 아름답고 나는 가난하다

젊은 날 우리 둘의 풍경이다

가난한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한다

비약이다.

 

* 본래 이 말은 시경에 있는 말로서, 율곡 이이는 나는 솔개와 뛰는 물고기의 본성이 같다고 해설하였다.

 

o 후기:

철학자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권장할 일이 못됩니다.

觀山 곽신환 교수가 우리 시대의 율곡인 것은 우리 고등학교 동기들이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8년 연말에 율곡을 인용하여 鳶飛魚躍이라는 말을 해설하였습니다. “시경에 있는 이 말은 훗날 유가 사서의 하나인 중용에서 진리의 영역이 넓고 크고 활발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활용되었고, 어약은 으로 연비는 로 축약되어 性同鱗羽 곧 본성은 헤엄치는 물고기나 하늘을 나는 깃털달린 새나 모두 같다는 성리철학의 주요표현이 되었습니다.” “성동린우는 이율곡의 말인데 그는 이 말에 이어서 愛止山壑 곧 사랑이 천산만학에 두루 머물러 있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나는 율곡과 곽교수 때문에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새해가 되어서도 계속 화두처럼 이 말이 뇌리에 남습니다. 햇수로는 무려 2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 이제 계급장 떼고 따져 봅시다.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치고 새는 하늘에서 납니다. 물고기나 새는 모두 생명체입니다. 생명이라는 본성에서는 동일할 겁니다. 그런 본성은 하늘()하였던지 진화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물고기는 하늘을 날 수 없고 새는 물속에서 헤엄치지 못합니다. 전혀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생명의 세계는 수많은 종과 셀 수 없는 생명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차이가 납니다. 만일 어떤 두 개체가 同一하다면 그 중 하나는 잉여물이거나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각각의 존재물들은 다른 것과 다른 고유한 본성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이것은 비록 생명체 전체의 본성은 아니지만, 생명체 전체에서 분리된 본성으로, 각각의 생명체에 주어진 分有된 본성이라고 할 수 있을 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형식적인 본성을 말해서 실제 세계에 무슨 효용적 가치가 있을까요.

그런데 율곡은 여기서 더 나아가 사랑이 온 천지에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솔개()는 아무 일없이 하늘을 나는 게 아닙니다. 호시탐탐 물속의 고기를 노리고 있습니다. 어떤 물고기가 솔개에게 잘못한 게 있습니까. 그런데 아무 죄 없는 붕어는 한 순간 솔개의 밥이 됩니다. 자연은 그야말로 먹느냐 먹히느냐 잔인한 투쟁의 공간인 것입니다. 생태계의 피라미드에서 사람 같은 최고의 위치에 처한 포식자나 한가롭게 사랑을 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람도 다른 사람이나 바이러스의 습격 때문에 한시로 편할 날이 없습니다. 이런 잔인한 모습은 단지 피상적인 현상일까요. 생존의 욕망 너머에 그것을 가능케 하는 생명 그 자체는, 아니면 자연을 가능케 하는 원리나 , 아니면 세상의 근원인 마음의 본체는, 아니면 세상을 창조하신 은 정말 사랑일까요. 과연 율곡의 믿음처럼 하늘은 사랑으로 만물을 생성하고 생육시킬까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15000만 마리의 정자가 하나의 난자를 차지하려고 경쟁했습니다. 셀 수 없는 다수의 희생 위에 나는 태어났고 살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생명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삶의 궁극적인 목적도 사실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무한한 시간과 절대적인 공간 속에서 의미 없이 찰나를 살다가 후손만 남기고 죽는다는 생각도 듭니다.

觀山은 왜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던져 새해부터 우리를 괴롭힐까요. 나는 아무래도 고등학교를 잘못 선택한 것 같습니다. 거기서 골치 아픈 철학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매일 매일 예쁜 여자나 생각하면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