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세계로 가는 아버지
1931년 당시 독일은 나치스와 공산당 청년단이 격렬하게 싸우던 시기였다. 비밀 집회, 공포분위기를 자아내는 격론, 그리고 난투 등은 매일같이 일어나는 사건들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그 틈에 끼어서 좌익으로부터도 두들겨 맞고 우익으로부터도 두들겨 맞는 등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었다. 한마디로 국가의 장래에 대해 걱정이 많은 시대였다. 당시 젊은 사람들로서는 궐기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매일같이 토론과 투쟁을 계속하였다.
어느 날 아침 아버지께서 출근하실 무렵에 나는 대담하게 말씀드렸다.
“잠깐 말씀드릴 것이 있는 데요.”
“무엇이냐, 갑작스럽게?” 아버지는 웃옷을 입으면서 내 쪽을 돌아보았다.
“이번 주말에 모임이 있는데 참가 신청을 해도 괜찮을까요?”
“무슨 모임이냐?”
“일종의 세미나지요. 파시즘에 대한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아버지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반대 운동이라도 일으키는 거냐? 그러나 그런 이야기라면 충분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로구나. 지금 막 출근하려던 참인데 말이다.”
나는 이야기가 길어지면 효과가 없어지리라는 생각이 들어 급히 서둘렀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신청은 오늘이 마감입니다. 신청료는 제 용돈에서 변통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웃으시며, “너는 부자로구나. 그러나 너의 참가여부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생님께서도 꼭 참석해 주십사 하는 말씀이 있었는데요?”
“선생님께서?” 아버지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계속했다.
“요즘 같아서는 선생님 가운데도 사상적으로 이런 저런 유형의 사람이 있단다. 사상적으로 잘못된 사람까지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구나.” 그리고 아버지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 그런 말을 해봤자 결론 내리기가 어렵단다. 오늘 저녁까지 기다려라.” 그러나 나는 걸어가는 아버지를 따라가면서 끈질기게 부탁했다.
“친구들도 네뎃 참가합니다.”
“친구가 간다고 너도 가야만 하는 이치는 없지 않느냐? 아버지는 그런 것을 인정해주기 전에 너하고 천천히 이야기 하고 싶다. 오늘 밤에라도 좋다. 그 친구들도 데리고 오너라.”
나는 몹시 실망했다.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너의 아버지는 완고하시구나.”라는 말을 듣고서는 더욱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친구들은 “좋다. 우리들도 응원하마. 오늘 밤에 철저히 토론을 해서 너희 아버지를 설득시키자”하면서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아버지는 천천히 우리들을 돌아보면서 말씀하셨다. “딱딱하고 종잡을 수 없는 정치 이야기는 제쳐놓고 우선 너희들에 관한 아버지인 나로서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자식들이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서 돈을 갖다 쓰고 있는 동안은 적어도 성년에 이르는 날까지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점을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너희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나쁘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너희들이 하는 행동과 판단이 늘 완전하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책임의 한계는 더욱 문제가 된단다.”
“그러나 나치스의 하는 짓은 너무나 부당해요. 공산당은 더 지독하구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젊은 학생들이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들의 이데올로기나 잘못된 사상까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요?”
여기서부터 토론이 시작되었다. 어머니가 걱정할 정도로 우리들은 격렬하게 주장하였다. 우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아버지를 설득시키려고 미리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정리해 보는 등 많은 준비를 단단히 하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생각을 끝까지 들으셨다. 우리들이 이만하면 반론의 여지는 없으리라고 다소 의기양양하게 말을 마치자 아버지는 그럴듯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웃으셨다. 아버지는 소파 깊이 몸을 묻고 다리를 꼬고 앉아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우리가 이만하면 어떠냐 하는 식으로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리는 자세를 보고서 우선 식어가는 차를 권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다리를 풀어 자세를 바로하고 반격을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우리들 주장의 요점이 어긋난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뜻밖의 질문을 던져서 우리들을 놀라게 하였고, 거기다가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로까지 이야기를 발전시켜 결국은 우리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자신만만한 17세의 고교생을 상대로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는 아버지는 정면으로 아버지지의 책임과 생각을 피력하면서 당당하셨다.
역사, 경제, 정치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들은 구체적이고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틀림없이 아버지보다 아는 것이 많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무 거리낌 없이 진지하게 우리들을 설득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으셨다.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기회를 주면서……. 친구들도 이러한 아버지에 대해 ‘편협한 몰이해꾼’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하게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차를 다시 가져오라고 이르시면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분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너희들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다 실제적으로 생각해 보라. 지금 소동을 일으키는 것은 젊은 혈기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순간의 감정에 끌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고 나서 덧붙였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과 노여움은 귀중한 것이다. 그것이 꺼지지 않도록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지금의 감정을 잃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
이상하게도 그날 저녁 우리들은 아버지에게 진 것에 대해 실망하거나 별로 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의 통찰력, 그 신념에 감명을 받았다. 인생의 한 선배로서 아버지의 경험은 귀중한 것이라고 진심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친구들도 더 이상 아버지를 완고한 고집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께 작별 인사를 드리면서 모두들 “오늘 감사했습니다. 언제 다시 한 번 토론 드릴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돌아갔다.
<구스타프 포스, 아이들 세계로 가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