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서 보내는 편지(환경에 대하여, 4. 존 뮤어)
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환경에 대하여, 4. 존 뮤어)
19세기말 미국에서 처음으로 국립공원이 지정되었다, 미국의 제1호 국립공원은 1872년 지정된 옐로스톤 국립공원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을 본받아 국립공원제도를 운영한다. 우리나라의 제1호 국립공원은 지리산 국립공원이다. 1967년에 지정되었다. 미국의 국립공원을 지정할 당시 기포드 핀쇼(Gifford Pinchot) 와 존 뮤어(John Muir) 간에 자연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핀쇼에 의하면, 환경이나 자연은 인간의 목적을 위해 유용한 가치를 갖는다. 즉 도구적 가치(instrument value)를 가진다. 그런 자연은 공공의 최대 이익을 위해 지배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이 때 핀쇼가 말하는 자연의 보존은, 멸종되거나 착취되지 않도록 보호 관리하는 보존(保存, conservation)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뮤어에 의하면, 자연은 인간의 사용이나 목적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본래적 가치(intrinsic value)를 지닌다. 그런 자연은 신성한 것으로서 그 자체를 위해 보존되어야 한다. 이 경우에 보존은 그 자체의 온전성이 고스란히 유지되는 보전(保全, preservation)을 의미한다.
뮤어는 1869년 31세의 청년 시절, 양 떼를 몰고 시에라 산맥의 목초지를 돌아보는 네 달간의 산행을 떠났다. 거기에서 그는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산으로 올라가서 그의 계절을 느껴 보아라. 마치 햇살이 나무에 흘러들 듯 자연의 평화가 당신에게 흘러들 것이다. 바람은 당신에게 상쾌함을, 폭풍은 에너지를 불어넣을 것이며, 그리하여 가을 낙엽 떨어지듯 당신의 근심 걱정도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말년에 『나의 첫 여름』을 출판했고, 요세미티, 세쿼이아, 라이너 산, 페트리파이드 숲, 그랜드 캐니언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1892년에 시에라 클럽(Sierra Club)을 창설하여 평생을 지구 생태계의 보전에 헌신하였다.
뮤어에 의하면 자연은 물론 도구적인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자연은 그 이상의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요세미티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토록 진기한 장관을 보고도 눈에 안대라도 하고 귀를 막기라도 했는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 참으로 이상하다. 내가 어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빙 둘러 싸고 있는 모든 산에서 흘러든 강물들이 모여 부르는 장엄한 노래의 울림으로 웅대한 바위들이 떨리고, 그것은 하늘에서 천사들을 끌어내릴 만한 음악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존경할 만하고 현명해 보이는 사람들마저도 송어를 잡기 위해 구부러진 철사에 벌레를 몇 마리씩 끼우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오락이라고 불렀다. (---)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더할 나위 없이 장엄한 물과 돌의 설교를 행하는 동안, 살려고 발버둥치는 물고기들의 고통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요세미티 신전에서 그런 오락을 하다니!”
자연은 종교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신비스러운 성전이다. 그리고 심미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원천이다. “이제 우리는 산속에 있고 산은 우리 안에 있어, 우리의 땀구멍 하나, 세포 하나하나를 채워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모든 신경을 전율케 했다. 살과 뼈로 된 우리 육신의 장막(帳幕)은 유리처럼 투명하게 우리 주변의 아름다움을 비춰 주었다. 마치 우리가 아름다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부분이 된 듯 공기와 나무, 개울과 바위와 더불어 햇빛을 받으며 전율했다. 이 모든 것들이 자연의 일부로서 늙지도 젊지도 않고, 아프지도 건강하지도 않으며 영원불멸한 듯 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땅이나 하늘에 의존해 사는 육체적 조건뿐만 아니라 음식이나 호흡에 의존하는 육체적 조건도 거의 망각할 지경이었다. 이 얼마나 완벽하며 유익하고 멋진 회심(回心)인가! 옛 속박의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옛 시절을 바라볼 수조차 없게 되었고, 이 새로운 삶 속에서 우리가 늘 살아온 듯하다.” 더 나아가 자연은 그 자체로 목적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자연은 인간의 단지 이용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비록 너무 고요하고 인적이 드물긴 하지만, 여기는 모든 선한 것들과 완전한 영적 교감을 나누며 세상을 향해 열린 곳이다.”
뮤어와 핀쇼는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헤치헤치 계곡에 댐을 건설하려는 샌프란시스코 시의 계획에 대해서 서로 격렬하게 논쟁하였다. 핀쇼는 댐 건설은 거대한 양의 물을 확보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시 당국의 계획을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뮤어는 아름다운 헤치헤치 계곡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야 하며, 이를 파괴하는 인간의 어떤 행위도 거부되어야 한다고 투쟁하였다. 그러나 뮤어의 투쟁은 경제 논리에 막혀 좌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