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환경에 대하여, 2. 종교적 기원)

이효범 2021. 4. 8. 14:58

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환경에 대하여, 2. 종교적 기원)

 

린 화이트(Lynn White) (Science 155(1967))라는 논문에서, 유대-기독교의 신이 모든 만물을 창조한다는 성경의 창세기 1장이, 현재 환경 위기의 근원이라고 주장해서 많은 논쟁을 야기시켰다. 창세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에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26),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7)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28)”

 

여기에는 하나님이 도덕적 위계질서를 창조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거기에서 인간은 자연보다 우월하고 자연을 지배하도록 신에 의해 명령을 받았다. 이것은 인간중심적 관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성경에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주장하는 측면도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은 인간중심주의에 입각하여 성경을 해석하여 왔다. 그리고 이런 인간중심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현대의 과학과 기술이 발전되었다. 그리고 그런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환경 문제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린 화이트는 성서의 인간중심적 관점이 환경 위기의 기원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유진 하그로브(Eugen C. Hargrove)환경 윤리학에서, 창세기가 환경에 대한 인간의 파괴적인 행위를 정당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자신의 허약한 위상 때문에 불안을 느끼고, 생존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성경은 그런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고 반박한다. 또한 제임스 스터바(James P. Sterba)윤리학에 대한 3가지 도전에서, 창세기 128절의 지배권에 대해서는 2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인간이 인간 이외의 자연을 지배하도록 즉 동물과 식물의 이익에는 전혀 독립적인 비중을 두지 않고, 우리가 바라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동물과 식물을 이용하도록 요구되거나 혹은 허용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배권(dominion)을 지배(domination)로서가 아니라, 인간 이외의 자연을 보살피는 책무(stewardship, 지배하에 놓인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함, 그들의 복리를 위해야 할 신에 대한 책임이 인간에게 있음)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책무는 우리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여 우리가 짐승과 식물을 이용할 수 있는 방식에 한계를 부과하며 따라서 다른 생물이 번성할 수 있게 한다.

 

피터 싱어는 동물해방에서, “에덴동산에서는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까지 이러한 지배권에 포함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세기 1:29는 인간이 태초에는 풀과 나무 열매를 먹으며 살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에덴은 어떤 형태의 죽임도 없는 완벽하게 평화로운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다. 비록 지배는 했지만 그와 같은 지상 낙원에서의 인간들의 지배는 자비로운 전제(專制)였던 것이다.”(p.318)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은 타락과 홍수 이후에 동물을 먹게 되었다고 말한다. “신은 노아와 그의 자식들을 축복하여 말했다. 낳으라, 번식하라, 땅에 가득 차라. 땅 위의 모든 짐승, 공중의 모든 새들은 너희들을 두려워하고,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과 바다의 모든 고기들과 함께 너희들의 수중에 들어오리라.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모두 너희들의 양식이 되리라. 채소와 함께 이런 모든 것을 너희들에게 주리라.”(p.319)

 

A.H. 휘터만과 A.P. 휘터만도 성서 속의 생태학에서 린 화이트와는 달리 성서는 오히려 생태 친화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고대 유대인들은 지속가능한 큰 삶을 살았다.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기 시작할 때부터 첫 3년 동안에는 열매를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썩게 해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레위기 1923-25), 일주일에 하루씩 안식일을 갖듯이 7년마다 한 해씩 수확 안식년을 가졌다.(레위기 258-13) 물속에 사는 동물 중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을 먹어서는 안된다,”(레위기 119-11)라는 계율은 모기를 비롯하여 온갖 해충을 잡아먹는 개구리를 보호하는 생태학적 지혜를 담고 있다. 그리고 고대 유태인들은 개인의 토지 소유를 49년으로 제한했다. 당시 유태인들의 평균 수명이 50년 남짓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는 토지 세습을 막아 토지의 사유화 때문에 벌어지는 환경파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정책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세상에 유태인만큼 까다로운 음식계명을 가진 민족도 별로 없다. 좁고 척박한 땅에서 먹지 말라는 것투성이인 율법을 지키면서도 수백 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한 그들의 생활 철학 덕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