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행
o 나는 최근 가까운 백화점에 갔다가 반갑게도 루스를 우연히 만났다. 루스는 내가 보살핀 환자의 아내다. 그녀의 남편 래리는 석 달 전에 사망했다. 그런데 루스를 보니 기운이 하나도 없고 우울해 보여 걱정이 되었다. 나는 루스가 우리 사별 지원팀의 도움을 받고 있는지 궁금했다. 호스피스에서는 사망 후 첫 생일, 첫 추수감사절 등 처음 들어오는 모든 추모일을 함께 해주는 등 사망 후 13개월 동안 가족과 친지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유익한 지원은 대개 무료다.
도움을 요청했는지 내가 묻자 루스는 재빨리 이렇게 대답했다. “안 했어요. 요즘 모든 게 엉망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아마 내가 미친 걸로 생각할 거예요.” “무슨 일이에요?” 내가 묻자 루스는 내 한쪽 팔을 잡고 의류 매장의 조용한 코너로 갔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남편이 죽으면 슬픔을 견디기가 어려우리라고는 알고는 있었어요. 그렇지만 지금 나는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요. 우리 애들은 내 걱정을 하면서 나더러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말까지 한다니까요.” 루스는 남이 들을까 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뭐가 문제인지 얘기를 해 보세요.” 내가 물었다. “잘 자고 있는데 남편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잠을 깬 적이 몇 번 있어요. 남편의 소리가 너무나 분명하고 컸어요. 남편이 죽은 방으로 찾아가 보기까지 했어요. 물론 그 방에 있던 환자용 침대는 이미 치우고 없어요.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정말로 끔찍한 기분에 빠지고 눈물이 솟구치지요. 그러고 나면 다시 잠들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완전히 불면증에 시달리게 됐어요. 다시 남편의 소리가 들릴까 겁나요.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루스. 그런 일은 아주 일반적이라는 얘기를 들으시면 놀랄 거예요. 당신은 지금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는 것 아니에요. 이런 경험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요. 아직 사별 지원팀의 지원을 안 받고 있다니 안타깝네요. 지금이라도 시작하세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이해하도록 도와줄 겁니다.” 안도의 물결이 루스의 얼굴에 스쳤다.
나는 또한 빌 구겐하임과 주디 구겐하임 부부가 쓴 ‘하늘나라에서 온 인사’Hello From Heaven라는 책을 읽으라고 추천했다. 이 책은 저자들이 ‘사후의 의사소통’ADC이라고 이름 붙인 사례를 3000건이나 직접 조사해 저술한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도 고인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슷한 경험을 토로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나는 그런 순간을 ‘천사의 키스’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혼자만 특별한 슬픔을 느낀다는 생각 때문에 특별하다고 할 수 없는 이런 현상들에 공포를 느낀다. 여러 느낌이 쉽게 한데 합쳐지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멀쩡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루스가 놀라고 당황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유족들에게는 이미 사망한 사람과의 이렇게 너무나 생생한 체험이 아주 흔하다고 우리 호스피스의 사별 지원팀은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정말로 남편이 당신과 접촉하고 싶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내 생각을 말했다. “난 그렇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는 증명될 수 있고 합리적인 것만 믿으면 자랐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과 내가 이상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들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왜 아무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을까요? 당장 그 책을 봐야겠어요.” 루스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껴안고는 작별 인사를 했다.
구겐하임의 ‘하늘나라에 온 인사’에는 ADC(사후의 의사소통)에 대해 다름과 같의 장의하고 있다. 사후의 의사소통을 뜻하는 ADC는 고인이 된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직접적이고 자연스러운 접촉을 받았을 때 일어나는 영적인 체험이다. 심령술사나 영매 또는 최면술사 같은 중개자나 제3자가 없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험이다. 고인이 된 친척이나 친구는 일대일로 살아 있는 사람과 접촉한다. 이것은 고인이 살아 있는 사람과 접촉할 시간, 장소, 방법을 정하고 일어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는데 모두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영역을 초월한다. 이해할 수 없지만 어떤 사람들은 돌아가신 분이 곁에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내 환자였던 분의 딸은 이런 말을 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머니가 이 방에 나와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도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환영을 보았다는 말을 한다. “차를 운전해서 지나가는데 사촌이 버스 정류장에 있는 걸 봤어요. 순간적으로 너무 기뻤어요. 하지만 사촌을 부르려고 고개를 돌렸더니 아무도 없더군요.”
또 어떤 이들은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어떤 어머니는 이런 얘기를 했다. “아들이 응급 수술을 받고 있을 때 나는 수술실 대기실에서 울며 앉아 있었어요. 그때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께서 ‘모든 게 잘될 거야’ 라고 말씀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엄청난 평화와 안도감이 나를 감싸는 기분이었어요. 아버지 말씀이 옳았고 아들은 아주 잘 회복했어요.”
사랑했던 고인의 손길을 직접 느끼는 경우도 있다. “곤하게 자고 있는데 뺨에 가벼운 키스를 받고는 따스함과 사랑을 느끼며 잠이 깼어요. 나중에 전화가 왔는데 한 시간 전에 내 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어요.” 고인을 생각나게 하는 냄새를 맡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어떤 남성은 이런 얘기를 털어놓았다. ‘아내와 사별한 후 2년째 혼자 지내 왔어요. 명절날이 특히 지내기 힘듭니다. 지난주 집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집들, 화려한 조명, 크리스마스트리를 운반하는 가족들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어요. 몹시 울적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 문을 여는데 기적 같은 일어 벌어졌어요. 아내가 즐겨 요리하던 칠면조 고기, 그리고 칠면조 속에 채워 넣던 맛있는 요리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지 뭡니까. 나는 아내가 나와 함께 있다는 걸 알았지요.“
어떤 가족과 친지는 고인으로부터 중요한 메시지를 받는다는 얘기를 했다. “집을 보러 다니는 중이었는데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더니 내가 맘에 들어서 계약을 하려고 하는 그 집에 대해 계약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너무나 완강한 말투였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른 집을 구하기로 결정했어요. 한 달 후 앞서 내가 계약하려고 했던 그 집이 전기배선 불량으로 한방중에 홀딱 불에 타 버리는 사건이 났답니다. 그 집을 샀더라면 우리는 아마 잠자다 모두 불에 타 죽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생생한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 꿈속에서 사망한 사람이 나타나 자기는 행복할 뿐만 아니라 아프기 전의 힘과 활력을 회복했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허약하고 지친 상태로 생을 마감했더라도 다른 세상에 가서는 다시 완벽하고 온전하게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어떤 남성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조카 로스는 열두 살 때 다리를 절단해야 했는데도 골암으로 몇 년 후 사망했습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 로스는 백혈병으로 화학치료를 받고 있던 어린 소녀 리사와 친구가 되었어요. 리사는 머리가 빠져서 부끄러워했지만 로스는 항상 리사에게 예쁘고 용감한 소녀라고 말해 주었지요. 안타깝게도 리사도 일 년 더 있다가 죽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꼭 이 말을 하고 싶군요. 나는 그 아이들이 지금은 모두 잘 있다고 믿고 있답니다. 어느 날 밤 꿈에서 그 아이들이 햇빛이 가득한 아름다운 벌판에서 달리는 모습을 너무나 생생하게 보았어요. 둘 다 아주 행복해 보였어요. 로스는 내게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었어요. 두 다리를 다 가지고 있더군요. 리사의 아름다운 머리칼도 도로 다 나 있었어요. 지금껏 내가 꾼 다른 어떤 꿈보다도 훨씬 더 생생한 꿈이었어요. 마치 그 아이들이 정말로 내게 자기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려 주려고 한 것처럼 나는 아주 평온한 느낌 속에서 잠을 깨었습니다. 나는 그 얘기를 하러 리사의 어머니를 찾아갔어요. 리사의 어머니는 무척 많이 울었어요. 그렇지만 딸애가 그렇게 온전하고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되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 꿈은 리사 어머니에게도 평온한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잠을 깨어 있는 상태에서 너무나 생생하게 일어나는 경우도 흔히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우연한 일, 백일몽이라거나 또는 점심 때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일 거라며 가볍게 무시해 버리기도 하지만 루스 같은 사람은 자기가 미쳐 가고 있는 중일 거라고 느낀다. 어쨌든 여러 증거들을 종합해보면 사망하는 순간과 사망 전후에 강력하고 중요한 의사소통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리가 그런 소통을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그런 소통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의사소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에게 어떤 소식을 전해 주고, 격려해 주려고 하는 멋진 정보를 놓치는 것이 된다. 우리가 그 의사소통을 받아들인다면 그 정보는 우리가 갖고 있는 죽음과 애도의 공포를 줄여 주고, 우리도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리라는 소중한 인식을 우리에게 심어준다. 이러한 체험들은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사랑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매기 캘러넌, 마지막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