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 2021. 2. 23. 12:48

8세 반부터 10세 이전의 연령의 대부분의 아동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거의 예외 없이 사랑받는(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문제이다. 이 연령까지의 아동은 아직도 사랑할 줄 모른다. 그는 사랑받는 경우 기쁘고 즐겁게 반응할 뿐이다. 아동 발달의 이 단계에서 아동의 심상에는 새로운 요인, 곧 자신의 행위에 의해 사랑을 만들어 내려는 새로운 감정적 요인이 생긴다. 처음으로 어린이는 어머니(또는 아버지)에게 뭣인가 주려는, 무엇이든(시나 그림, 그 밖의 것들) 만들어 주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린이의 생활에서 처음으로 사랑의 관념은 사랑받는 것으로부터 사랑하는, 창조적으로 사랑하는 것으로 변한다. 이렇게 처음 시작할 때부터 사랑이 성숙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마침내 어린이는 이제 젊은이가 되어 자기 본위성, 곧 다른 사람들을 오직 자신의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극복한다. 다른 사람들의 욕구도 자기 자신의 욕구만큼 중요해진다. 사실상 다른 사람들이 더욱 중요해진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욱 만족스럽고 더욱 즐겁게 된다.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된다. 사랑받음으로써 그는 자아도취와 자기본위의 상태에 의해 이루어진 고독과 고립의 감방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는 새로운 합일감, 참여감, 일체감을 느낀다. 더 나아가 그는 사랑받음으로써 받아들이는 의존의 상태보다는 오히려 사랑함으로써 사랑을 만들어 내는 잠재력을 느끼고,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작고 무력하고 병든, 또는 착한애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애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있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르고 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