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58. 친구에게)
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58, 친구에게)
o 친구에게
구녕 이효범
친구여, 오늘도 나는 너에게로 간다.
너는 언제나 인생에서 진지하지.
세상을 너무나 많이 알고 있고
사리에 있어서도 시시비비가 분명하다.
그러나 너는 내가 물어도 좀처럼 결론을 내지 않는다.
강의하거나 긴 호흡으로도 말하지 않는다.
문장은 짧게 끊고 더 많이 나의 말을 인용한다.
내가 말할 때는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온 몸을 움직이며 동감을 표시한다.
설령 내가 음탕한 길로 같이 가자고 꼬여도
비난하지 않고 흥미롭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네가 나는 좋다.
우리가 함께 지냈던 과거로 너를 초대해도
너는 재빨리 현재와 미래로 달아난다.
뒤를 돌아다보면 소금기둥이 된다고 웃는다.
이제 퇴직했으니 휴식할 때라고 내가 억지를 쓰면
진정한 휴식은 일하는 거라고 너도 억지를 쓴다.
그런 네가 나는 부럽다.
호흡도 거칠게, 투정하며 네 뒤를 따라가면
높은 산에 오르는 것처럼 풍경들이 새롭다.
고맙다 친구여, 친구 따라 강남에 오니
날씨도 따뜻하고 꽃도 만발해 있다.
우리가 지상에서 이미 영혼으로 만났으니
하늘에서도 영혼으로 만나리라.
후기:
사람과의 만남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만남 중에 어떤 사람은 그냥 스쳐가고 어떤 사람은 오래 머뭅니다. 『주역』 <계사> 상편에는 “삼라만상은 그 성질이 유사한 것끼리 모이고, 만물은 무리를 지어 나뉘어 산다. 거기서 길흉이 생긴다(方以類聚 物以群分 吉凶生矣)”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 간의 관계 중에 가장 가깝게 오래 어울리는 친구라는 관계는, 무엇인가 주역의 말대로 유사함이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유사함을 내적으로 관통하는 핵심은 通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관통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맺은 통함도 불변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기막힌 친구의 행동을 보면 우리는 친구를 떠나게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입니다. 그 친구가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을 넘어 나의 영혼까지 고양시킨다면, 이것보다 인생에서 더 큰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그런 친구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듯,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성간의 사랑도 그렇듯이 동성 간의 友情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부단히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젊게 살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제 친구를 새로 만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에서 얻은 돈도 명예도 지위도 공과도,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야 할 이 나이에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랜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다. 모진 마음을 스스로 풀고 떠난 친구를 용서하고, 또 내가 실망시킨 친구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내가 죽은 후에 혼자 나의 무덤에 와서 우는 친구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래도 인생을 헛되게 산 것은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