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진학과 어머니
대학합격 통지서가 날아오던 날, 어머니는 처음으로 자식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수박농사를 망쳐 농협에 진 빚이 산더미처럼 늘어도 무 배추 값이 폭락해 모두들 낙담할 때도 담담했던 어머니였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그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았기에 꿈에도 그리던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작은 사무실에 취직했습니다. 없는 살림에 생활비 대느라 몇 년, 동생들 학비 대느라 또 몇 년… 그렇게 7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야 겨우 숨 돌릴 틈을 얻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주냄새 폴폴 나는 아줌마가 된 뒤에도 배움의 열망은 불쑥불쑥 솟구쳤고 더 이상은 억누를 길이 없어 나는 방송통신대학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남들 보다 몇 걸음이나 느리고 더뎠지만 정말 열심히 공부하던 어느 날,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바쁜 농사일을 젖혀두고 한걸음에 달려 오셨습니다.
“잘했다. 내가 너 대학 못 가르친 게 두고두고 한이 되었는데…….”
어머니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고쟁이속 쌈지에서 얼마간의 돈을 꺼내 내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얼마 안 되지만 등록금에 보태 써라.”
나는 그 돈이 어머니가 환갑 때 받은 가락지를 판돈이란 걸 알고는 극구 사양했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셨고, 어머니는 내가 그 돈을 받은 뒤에야 생전 처음으로 시집간 딸네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 가셨습니다. 결혼한 지 6년이 지나도록 잠은커녕 밥 한 공기에도 면목 없다며 미안해하던 어머니는 그날 밤 비로소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 마음이 편안해지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