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장례식
큰 효는 부모를 존경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고 그 밑으로는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다.
<예기, 大孝尊親 其次弗辱 其下能養>
메모리얼 테이블에는 고인의 손때 묻은 성경과 찬송가가 놓였고, 손자 손녀들이 고른 할머니의 좋았던 시절 사진이 걸렸다. 효자손(등긁이)도 한자리를 차지했고 손자 손녀들이 할머니에게 쓴 편지가 함께 놓였다.
이달 초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대표 송길원 목사)에서 열린 새로운 방식의 장례식 풍경이다. 송길원 목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이 장례식 과정이 개신교게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송 목사는 우리 개신교게에선 익숙지 않았던 ‘가정 사역’ 개척자. 일상생활 전반을 개신교 신앙인답게 바꾸는 운동을 펼쳐왔다.
95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식 곤셉트는 ‘함박웃음’이었다. 할머니의 사진도 그 일환. 전시된 사진 중에는 70대 아들이 불룩한 배를 드러내고 있고 그 곁에서 어머니가 활짝 웃는 사진도 있었다. 조문객들은 이 사진들을 보면서 저절로 미소를 머금었다. 일반 장례식장에서 상주와 눈도장 찍고 돌아서던 것과는 달랐다. 조문객들이 머무는 접객실 시계는 0시 39분에 멈춰 이었다. 고인이 숨을 거둔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장치였다. 접객실에선 고인의 발자취가 영상으로 상영됐다. 고인의 유해는 호텔방처럼 우아하게 꾸민 안치실에 모셨다. 수의 대신 평소 입던 개량한복을 입었다. 접객실에선 유족들이 조문객 체온 체크부터 음료 서빙까지 다 맡았다.
조문객들에게는 인근 식당 식사권을 제공했다. 일명 ‘맛기행’. 8000~1만 2000원짜리 한정식, 곰탕, 콩나물불고기, 왕갈비탕, 닭갈비정식 등등이었다. 식당 주인들도 좋아했다.
하이라이트는 발인. 일반적인 ‘발인 후 화장(火葬)’ 순서를 ‘화장 후 발인’으로 바꿨다. 화장장에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이 많은 점을 고려했다. 고인의 유해가 화장장으로 출발한 후 아들은 며느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치매 어머니를 정성스레 수발해줘서 고맙다”며. 발인 예배 역시 달랐다. 며느리들은 “임신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파인애플과 바나나 한 다발을 사주시며 ‘아무도 주지 말고 너만 먹어’ 하셨다” “마지막까지 며느리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안 먹어’ ‘안 입어’ ‘안 벗어’를 입에 달고 사셨다” “‘보라색 파마 머리가 예쁘시다’고 하면 ‘돈 많은 영감 소개해 달라’며 웃기시던 어머니”를 추억했다. ‘함박웃음’ 곤셉트 그대로였다. 예배 후 조문객들과 가족들은 손 하트를 그리며 “아버지 어머니, 천국에서 봬요~”라고 작별했다. 유족들끼리 포용하면서 서로를 위로 했다. 발인 예배는 딱 1시간이 걸렸다.
송 목사는 이 장례식의 총비용까지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전체 비용은 431만 7000원, 수의와 상복을 사용하지 않았고 관은 종이, 유골함도 한지로 만들었다. 꽃은 플로리스트가 남대문 꽃시장에서 직접 구입했고, 장례 도우미도 유족이 다 맡은 덕분이다.
하이패밀리는 이 장례를 ‘첫 장례’로 명명했다. 앞으로 이런 방식의 장례식을 확산시키겠다는 의미다. 송 목사는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의 장례는 ‘장례지도사’가 다 지도하는 형식적 장례가 됐다”며 “개신교 신앙인다운 장례는 어떤 것일까 고민하던 중 이번 장례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0년 12월 11일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