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껴안다(시집)
시골 산책
이효범
2020. 12. 15. 10:53
o 시골 산책
구녕 이효범
햇살 고운 가을을
하루 종일 걸었습니다.
깊은 시골은 늙은 사람뿐이어서
곡식도, 과일도 훌러덩 옷을 벗고
온 몸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벗은 몸에 스스로 취한 여인을
몰래 엿보는 어린 아이 심정으로
들로 난 좁은 길을 따랐습니다.
내 거친 발자국에 놀라
나무 가지 위에서 졸던 뱀 떨어지고
그 뱀 소리에 놀라 안방 같던 공간이
바르르 몸 떨었습니다.
산속으로 가면 어두운 종교로 들어갈 것만 같고
개천을 넘으면 술집으로 향할 것만 같아
들국화 한 다발을 화들짝 꺾었습니다.
어둡기 전 고운님을 만나겠지.
황홀하게 노을 속을 혼자서
신나게 걷고 또 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