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서 보내는 편지(2)
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2)
구녕 이효범
새벽에 일어나 편지를 씁니다. 인생에 단 한편이라도 좋으니 국민에게 영원히 애송되는 시를 쓰겠다. 그러기 위해 수도자처럼 가장 맑은 정신으로 한 문장을 건져 올리겠다. 그런 각오로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은 고등학교 동기 골프 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이번 모임에는 20명이 치는데 명단에 나와 있는 핸디를 보니 창피하게도 내가 제일 꼴찌였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무엇인가를 보여 보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일찍 잤습니다, 깨어보니 12시 30분밖에 안되었습니다. 다시 어렵게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3시 40분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천으로 취소되었다는 카톡이 왔습니다. 다시 잠은 청할 수 없고 그래서 꼭두새벽에 고양이 대신 호랑이라고 편지를 씁니다.
지금 세종의 인구는 2010년 8만 3000명에서 33만 명이 넘어섰습니다. 지속적으로 인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제 뉴스에는 중앙부처 중 마지막으로 세종으로 이주하는 정보통신부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그런 영향인지 세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은 도시입니다. 평균 연령이 2016년 36.8세이고, 출산율은 2015년 기준 1.89명으로 전국평균 1.24명보다 월등이 높습니다. 이런 희망적인 지표도 많지만, 세종시는 젊은 도시이고 전문가가 짧은 기간 내에 도시공학적으로 설계하여 세운 도시이기 때문에, 기존 도시에 익숙한 우리 같은 시니어에게는 생소하고 불편한 점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우선 교통시스템이 불편합니다. 차는 도시 전체에서 시속 50km를 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고 있고, 신호등이 너무 많아서, 도시 중심을 지나갈 때는 나 같은 양반도 몇 번을 욕을 하게 만들 정도로 지체됩니다. 차를 길가나 골목에 슬쩍 주차시킬 수도 없습니다. 언제 왔는지 감시 카메라가 상시적으로 불법주차를 단속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목적지 빌딩의 어두운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나는 젊었을 때나 물었던 벌금고지서를 벌써 두 장이나 받았습니다. 그리고 길은 넓고 깨끗하고 푸른 녹지 공간은 널널한데 걸으며 쇼핑하는 재미는 없습니다. 서울의 인사동 골목이나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 주변의 그 한가하고 고풍스러운 모습은 찾기 힘듭니다. 가게들은 몰처럼 뭉쳐서 집중화되어 있고, 집중화된 여러 곳을 가봐도 부대나 구내식당 같은 음식점, 젊은이들이나 좋아할 커피숍, 인스턴트 문화적인 징표들로 서로 비슷비슷합니다. 오랜 시간이 만드는 도시 분위기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서양철학은 영국과 미국권과 독일대륙권이 다른 색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 서양철학은 한 때 영미권은 분석철학이 유행하였고 대륙권은 현상학이 중심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분석철학운동 초기의 중요한 철학자는 버트란트 러셀과 루드비히 비트겐스타인입니다. 이들은 젊은 시절에 理想言語(ideal language)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언어는 세계의 모습을 잘 묘사하여야 하는데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는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실제로 기호논리학에 기초하여 이상언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실패하였습니다. 언어는 그렇게 단순하게 세계를 묘사하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하고 복잡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족하고 결점 많게 보이는 일상적인 언어가 사실은 이 모든 기능을 수행하는데 더 적합하고, 또 그런 자연적인 언어는 생물처럼 살아서 지혜롭게 스스로를 환경에 적응해나갑니다.
나는 도시도 언어처럼 그렇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도시도 하나의 단순한 기능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몇 사람의 전문가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시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구축되어 왔습니다. 그 속에는 하늘과 땅과 인간의 뜻이 반영되어 있고,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남김없이 용해되어 있습니다. 즉 도시는 그 속에 사는 인간의 종교와 철학과 정치와 문화와 사회와 경제와 예술과 교육 등 모든 것이 시간과 합작하여 만드는 작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시도 사람처럼 인격을 가지고 있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나는 세종시가 그런 멋진 인간적인 얼굴을 가진 도시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아직 무리일 것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갓난아이에게 성숙한 미인의 얼굴을 바라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꽉 막힌 학자나 하는 헛소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희망적인 것은 어린 우리 세종시가 싹이 노랗지 않다는 것입니다. 떡잎을 살펴보니 정치적인 지형의 큰 폭풍이 아니라면 미스 코리아가 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지금 비가 멈춘 듯합니다. 강에 나가 봐야겠습니다. 옛날에는 큰 비가 온 뒤에는 강이 장관이었습니다. 돼지도 떠내려가고 심할 때는 초가집도 떠내려갔는데 여기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위에 용담댐도 있고 대청댐도 있으니 그렇게 거센 황톳물은 아닐 것입니다. 혹시 대청댐 이 수문을 연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하늘로 오르는 힘찬 물줄기를 보면 여름 더위가 모두 사라질 것 같습니다. 또 편지 하겠습니다.
2019년 7월 26일 금요일